지난 9일 대구에서 발생한 변호사 사무실 방화 참사는 불을 지른 자가 패소한 상대방 당사자라는 점에서 정말로 충격적이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인 사법 체계에 대한 심각한 테러가 벌건 대낮에 벌어진 것이다.
필자는 올해로 변호사를 업으로 한 지 16년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을 진행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의뢰인 숫자에 상응하는 상대방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다.
의뢰인을 대신해서 분쟁 상대방을 법리적으로‘공격’하고 ‘방어’하다 보면, 겉으로만 말짱하지 속은 썩어가고 있는 것 아닌지 혼자서 쓴웃음을 진 적이 여러 번 있다. 재판과정에서 어느 순간 상대방이 변호사인 나를 당사자와 동일시하여 적대감을 표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는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을 통해 모욕주거나 불만을 드러내지만, 종종 사무실로 항의 전화가 오거나 때로는 직접 화풀이 대상이 된 적도 있다.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고소인으로부터 법정 복도에서 심한 항의를 들은 적이 있고, 재판 마치고 시비 거는 상대방과 말싸움하다가 법정 경위가 와서 말린 적도 있다. 주변에서는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와서 난동을 벌이거나, 특히 여성 변호사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번 사건 이후 변호사들은 가스총이나 삼단봉 등 개인 호신용구를 구입하거나 구입을 위한 정보 교환이 한창이다. 오죽하면 대한변호사협회까지 나서서 호신용구를 협회 차원에서 공동구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말도 들린다. 제시된 호신용구 모델 중에는 전문 경비업체나 군부대에서 활용하고 있는 모델도 있다고 한다. 법을 도구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변호사가 군부대에서 쓰는 호신용구를 준비해야 하는 현실이 참 '웃프'기만 하다.
일반 시민들이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할 때는 눈앞에 벌어진 법적 분쟁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다. 소송을 제기하거나 소송을 당할 때, 또는 고소하거나 고소를 당했을 때 자기를 대신해서 법적으로 다투어 줄 ‘법률 전문가 자격을 지닌 검투사’를 찾는다.
법적 절차는 일반 시민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변호사는 절박하게 찾아온 의뢰인을 떠올려가며 판례와 교과서를 뒤지고, 상대방 주장의 허점을 찾아 공격하며, 관련 증거를 최대한 설득력 있게 정리해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제출한다. 우리 의뢰인의 손을 들어 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우리 사회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자력으로 해결하거나 보복하는 것이 아닌 사법 시스템을 통해서 분쟁을 해결하고,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공적 기관을 법원으로 정했다. 모든 국민이 헌법을 통해 합의한 결과다. 법원 판결도 최대 3번에 걸쳐 판단하게 하고, 뒤늦게 억울함을 증명해주는 증거가 발견되면 재심을 통해 확정판결을 뒤집을 수단도 마련했다. 권력자든, 재벌이든 누구든 법원 판결을 무조건 따라야 하고, 시민에게는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를 통해 자기 대신 법적으로 싸울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존중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변호사에게는 의뢰인을 위해 법리적으로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는 우리 사법 시스템의 한 축인 변호사제도의 근간을 뒤흔든 대형 참사다. 변호사가 상대방으로부터 위협을 받아 변론이 위축되면, 그 사건의 실체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억울해질 수도 있고, 이는 자연히 사법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되고, 자력 구제나 사적 보복이 횡행해져 사회 질서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
지난 2018년 진료 중 환자로부터 살해당한 고 임세원 교수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이후 의료행위를 하는 의료인 등에 상해 등을 가한 자는 가중처벌을 받게 되었고,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비상경보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되었다. 변호사도 변호사법 개정을 통해 의료인과 마찬가지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의사가 의술로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준다면, 변호사는 법적 수단으로 의뢰인의 신체·재산·명예를 지켜주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변호사법의 개정을 촉구하며, 끝으로 이번 방화 참사로 돌아가신 김규석 변호사님과 사무직원 등 6분의 명복을 삼가 빈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