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경주=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명운이 달린 윤리위 소집을 일주일 앞두고 보수의 심장 TK(대구·경북)로 향했다. 이 대표는 30일 경주를, 전날에는 포항을 찾았다.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당대표'가 '이준석'임을 대내외로 재확인 시키겠다는 뜻으로, 앞서 이 대표는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대구를 찾아 '박근혜 탄핵의 정당성'을 역설, 국민의힘의 일대 변화를 꾀했다.
이 대표는 오는 7일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출석해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과 관련해 소명하고, 심의·의결 처분을 받는다. 이 대표가 처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30일 오전 박성민 의원이 당대표 비서실장 직을 전격 사임하면서 이 대표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박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 대표 간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터라, 이번 사의를 윤 대통령의 '이준석 손절'로 보는 시선도 커졌다. 측근인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은 이미 윤리위로부터 징계 개시 처분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민심이 이 대표를 적극 두둔하고 나설 경우 윤리위의 예봉도 꺾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민심이 당의 심장부인 TK 보수민심일 경우 그 부담은 배가된다. 때문인지, 이 대표도 TK민심에 적극 기대며 자신의 높은 인지도를 적극 활용했다. 기자가 직접 만난 시민들은 연령대에 따라 이 대표에 대한 입장이 달랐다. 젊은층은 여전히 이 대표를 반겼지만, 고령대는 이 대표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9일 오후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서 시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9일 포항 시민들은 이 대표의 방문을 크게 환영했다. 이날 이 대표는 포항의 숙원사업이자 지난 지방선거 때 지원을 약속했던 영일만대교 현장 부지를 찾아 당 차원의 협력과 지원을 재확인했다.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정자에서 시민들과 악수 인사를 나누던 이 대표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우호적이었다. 성주에서 왔다는 한 가족은 이 대표와 사진을 찍으며 "아이고, 오늘 잘 왔다. 부산이 발전한 게 광안대교 때문이지 않나"라며 "(영일만대교도)반드시 좀 해주이소"라고 부탁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 현장에 함께 한 인사들도 이 대표를 시민들에게 적극 소개하며 힘을 건넸다. 연오랑세오녀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던 시민들은 이 대표에게 연신 사진을 요청하는 등 이 대표를 연호하고 반겼다.
이 대표의 절대적 우군인 2030도 반가움으로 대했다. 영일대 해변에서 만난 20대 시민들은 이 대표의 포항 방문 소식을 듣자 "이준석이 대표가 돼서 선거에서 이긴 것"이라며 앞으로의 변화와 기대감을 드러냈다. 성상납 의혹에 대해서는 "결과는 끝날 때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여기까지 온 데에 이 대표의 리드가 컸다. 주변에서도 많이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변함 없는 지지를 보냈다.
이날 이 대표의 '깜짝' 포항행은 혁신위 사조직론을 공론화한 김정재 의원의 지역구라는 점에서 방문 배경이 주목됐다. 당 안팎에서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장제원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을 기습 방문한 이 대표의 행보를 떠올렸다.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과 갈등을 빚던 이 대표는 당무를 거부한 첫 날 장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 당원협의회 사무실을 찾아 기념사진을 찍는 등 장 의원을 윤핵관으로 지목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포항행을 지난 부산행과 같은 성격의 대응으로 풀이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30일 경북 경주의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를 방문, 맥스터(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를 둘러보며 월성본부 관계자들로부터 원전과 폐기물 관리 현황을 설명 듣고 있다. (사진= 월성본부 제공)
이 대표는 30일 경주로 이동, 월성원자력본부를 방문해 윤석열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와 뜻을 같이 했다. 그는 "지난 정부 있었던 (탈원전)정책 전환에 이어 다시 한 번 원전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가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방문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행보가 '윤심'을 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냐는 질문에는 "전혀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대표의 윤리위 결과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중요하다는 게 여권 내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 대표는 "정치적 상황과 연계해서 해석하기에는 원자력 관련 일정은 이미 잡혀있던 것"이라며 "그것이랑 전혀 상관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 배웅에도 나서지 않아 양측 간 불편한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신경주역에서 만난 한 70대 남성은 "초년 출세·중년 상처·말년 가난을 조심해야 한다더니 딱 그 짝"이라며 "너무 초년에 출세한 거 아닌가 싶다. 저만 잘났냐"며 최근 국민의힘 내홍 원인을 이 대표에게서 찾았다. 그 옆을 지나던 80대 남성은 "당대표로서 화합이 아니고 자꾸 다투니 보기가 안 좋다"며 "안 그래도 당이 다 같이 뜻을 모아도 모자를 텐데 서로 내가 우두머리다 위신을 찾고 있다. 당 대표가 아울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가족과 함께 서울로 가는 길이라는 50대 여성은 "이 대표? 어리지만 잘 했지. 그런데 솔직히 사람들이 성상납이니 뭐니 그게 궁금할까"라고 반문한 뒤 "우리야 (정치에)관심이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국민의힘이 싸우기만 한다고 답답해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이 싸운다고 국민들이 그 과정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재명을 둘러싸고 문제가 있다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지지자로서 지금 싸울 때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전했다.
포항·경주=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