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케이팝이라는 투자 대상

입력 : 2022-07-05 오전 6:00:00
지난 6월 14일은 그렇잖아도 하향세인 증권시장, 특히 엔터테인먼트 주식에 폭탄이 떨어진 날이었다. 방탄소년단의 완전체 활동 중지 선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소속사인 하이브가 직격탄을 맞았다. SM, JYP 같은 회사에도 꽤 큰 유탄이 떨어졌다. 케이팝 신화의 정점인 방탄소년단의 폭탄 선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케이팝의 시대가 끝난 게 아니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 질문에 나는 반문했다. 1969년 비틀즈의 해체로 영국 음악 산업이 끝났냐고.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는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용광로의 역사였다. 18세기 후반 서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흑인들은 기독교 음악을 만나 가스펠을 탄생시켰다. 가스펠은 미국 포크와 어우러지며 블루스가 됐고, 블루스에 리듬이 강화되며 초기 로큰롤로 진화했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 문화가 대중음악의 초기 역사가 된 것이다. 1960년대 영국 청년들은 기존의 미국 음악을 더욱 야성적으로 해석하며 비틀즈, 롤링 스톤즈 같은 ‘브리티시 인베이젼’의 주역이 됐고, 그들은 미국과 더불어 팝이라 불리우는 음악의 양대축이 됐다. 그 이후로도 용광로는 멈추지 않았다. 자마이카의 레게는 밥 말리라는 스타를 내세워 영국을 거쳐 미국 시장에 자리를 잡았고, 브라질의 보사노바 또한 ‘Girl From Ipanema’라는 히트곡을 통해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후앙 질베르토 같은 브라질 스타들의 이름을 미국 재즈 시장에 안착시켰다. 레게와 보사노바 모두 이후 팝의 중요한 요소가 된 건 물론이다. 이 용광로의 가장 최근 재료는 한국에서 탄생했다. 케이팝 말이다.
 
팝에 스며들고,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은 음악에는 공통점이 있다. 글로컬(glocal)이다. 글로벌, 즉 미국 트렌드에 기반하되 로컬, 즉 지역적인 특징이 가미됐다. 브리티시 인베이젼은 미국 로큰롤에 비트를 강화하며 탄생했다. 레게는 미국 재즈가 자마이카 전통 음악과 만나서, 보사노바 역시 브라질의 삼바가 재즈와 결합하며 탄생했다. 익숙하되 새롭다는 특징이 있다. 케이팝 또한 마찬가지다. 영미의 트렌드인 힙합과 일렉트로닉에 멜로디를 강조하는 한국 시장 특유의 기호가 더해졌다. 라이브 문화 대신 TV의 영향력이 전통적으로 컸기에 방송에서 임팩트있는 시각적 요소, 즉 군무가 중요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잉태했고 H.O.T가 기틀을 잡은 케이팝의 뿌리다. 보아의 성공으로 케이팝은 내수 산업에서 수출 산업으로 진화했고, 슈퍼주니어에서 소녀시대를 거쳐 싸이에 이르는 흐름은 케이팝 시장을 아시아에서 서구로 확장했다. 다른 장르와 결정적 차이가 있다면, 미국으로 ‘직배송’된 게 아니라 한국에서 아시아로, 일본으로, 그리고 유럽과 미국으로 확장됐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 각국에 케이팝을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는 팬들을 넓혀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케이팝의 경쟁력이다.
 
레게와 보사노바를 비롯한, 변방에서 중앙으로 흡수된 ‘장르’의 국적은 서서히 소멸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케이팝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케이팝 그룹의 형식을 흉내낸 아이돌이 등장하더라도 현지 팬들에게 조차 낯설게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외국인 멤버가 섞여있을지라도 이 그룹의 최초 활동지가 한국이어야 하며, 한국 회사에서 기획한 팀이여야 한다는 무형의 불문율이 성립했기 때문이다. 케이팝이라는 두리뭉실한 이름에는 사실 단단한 함의가 존재하는 것이다. 아랍 석유 재벌이 프리미어 리그 구단을 인수하더라도, 그 구단은 계속 영국 구단으로 여겨지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케이팝은 장르, 혹은 스타일로서의 정체성 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적과 땔래야 땔 수 없는 문화라는 얘기다.
 
과거 증권시장에는 엔터주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거품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 오래된 말은 최근 하이브 주가 폭락과 함께 다시 떠올랐다. 과거 케이팝이 내수용, 혹은 아시아에 머물렀을 때 이 말은 맞았을 지 모른다. 하지만 케이팝은 언제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조금씩 더 넓은, 더 높은 곳으로 전진하고 올라왔다. 음악 산업은 스타의 공백을 싫어하는 속성이 있다. BTS가 대변하는 케이팝 아이콘이 잠시 공백에 놓였지만, 그 자리를 매우는 건 적어도 다른 나라의 음악은 아닐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와 ‘케이팝 산업’이 연동될 수 밖에 없는 한, 그 가치는 좀처럼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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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