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단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 스텝'을 단행했다. 이번 빅 스텝 시행은 한은 사상 처음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아울러 3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 역시 최초다.
이처럼 한은이 이례적인 빅 스텝 단행에 나선 것은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경제는 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 상황에 내몰려 있다. 그야말로 '비자발적' 긴축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물가 안정을 제1 목표로 삼는 한은 입장에서 최근 물가 흐름은 너무나 심각하다. 실제로 지난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6%나 치솟았다. 이는 외환위기였던 1998년 11월 이후 사실상 4반세기 만에 처음이다.
안타깝게도 이 같은 고물가 기조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주요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고, 이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의 경제 회복세가 둔화가 다시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를 넘어 7%대, 8%대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정도 수치라면 소비자가 현장에서 물가 급등을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아직 아니라고 일축했지만, 업계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대한 전면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연준)의 통화 정책 긴축 속도가 예상보다 더 빠른 점도 긴축의 시대를 앞당기는 요인이다. 사실 이번 빅 스텝의 단초가 된 것도 바로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이다.
미 연준은 최근 금리 목표 범위를 1.5~1.75%까지 높여놓은 상태다. 게다가 미국이 오는 26~27일(현지시각) 시장의 예상대로 다시 자이언트 스텝이나 그 이상 수준의 인상에 나선다면, 미국의 금리는 우리 금리를 넘어서게 된다.
미국과의 금리 역전은 곧 우리 경제에서 더 높은 수익률을 좇는 외국인의 자본 유출이 가속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원화 가치도 급격히 떨어지고, 무역수지도 침체되는 악순환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단 이창용 총재는 추가 빅 스텝 단행에 대해서는 비교적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한은은 이미 선제적인 빅 스텝에 나선 데다 물가 흐름이 전망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베이비 스텝'을 밟는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최근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이미 9%를 넘어서면서 금리 인상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이 빅 스텝을 최대한 자제한다 해도 당장 1개월 후, 2개월 후 상황이 급변해, 고강도의 통화 정책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당국의 의지만으로는 금리를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어찌 보면 정부와 한은은 지금부터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 지도 모른다. 고통스럽겠지만 면밀하게 글로벌 경제 상황을 주시하고 시장 흐름을 예측하면서 금리를 유효적절하게 조절해 내가는 것은 물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떠오르는 소비 위축의 가속화, 취약 계층의 고통 가중, 경기 침체 우려도 동시에 해결하는 정책 운영의 묘를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충범 경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