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기록적인 폭우로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위협 받고 자영업자들도 영업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몸만 빠져 나오기도 하고, 자영업자들은 집기류 피해로 당분간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한 가족은 이날 자정이 넘어서 몸만 겨우 빠져나와 주민센터 3층에 마련된 대피소로 이동했다. 반지하에 3대가 살던 가족은 휴대폰만 겨우 챙겨 나오면서 흙탕물에 젖은 옷도 갈아입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님, 아들과 함께 사는 주부 A씨는 "10년 전에 침수 피해가 심했을 때는 종아리까지 물이 차서 식구들이 같이 물을 퍼냈지만 이번에는 목숨에 위협을 느끼며 가족들과 빠져나왔다"라며 "아버지는 오물을 퍼내다가 피부에 이상이 생겨 출근도 못하셨다"라고 말했다.
9일 서울 관악구 신림주민센터에서 침수 피해 접수를 받고 있다. (사진=윤민영 기자)
주민센터 대피소에 있던 다른 가족은 "하수가 역류하기 시작하면서 빗물이 갑자기 얼굴까지 차올랐는데 그 시간이 불과 10분 정도였다"라며 "집에서 나와 인근 빌라 2층으로 올라갔는데 1층에 물이 반 쯤 찬 것을 보고 고립될 까봐 물살을 헤치고 나왔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주민센터 1층에는 피해 접수와 양수기 대여를 하기 위한 주민들로 아비규환이었다. 집 쓰레기 수거 요청 접수를 하고 있던 70대 주민은 "동네에 비상 상황이 생길 때 사이렌이 있는데 그게 울리지도 않았다"라며 "가구랑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이 뒤섞여서 도저히 혼자 힘으로 치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도 속수무책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침수 피해를 입은 곳은 기계 고장이 속출하고, 하루 종일 양수기로 물을 빼야 해 영업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낙지 음식점에서 침수 피해로 수족관이 고장 나며 낙지가 모두 죽어있다. (사진=윤민영 기자)진=윤민영 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낙지 음식점을 운영하는 70대 자영업자 원씨는 "어젯밤(8일) 폭우가 내리면서 정전이 되고 침수 때문에 냉장고랑 수족관이 다 망가져서 낙지 60마리가 다 죽고 냉동 해물도 다 버렸다"라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이번으로 끝내지 말고 다음 재해에도 완벽하게 대비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인근에 위치한 설비 업체는 바닥에 장비를 모두 널어 놓고 선풍기로 말리고 있었다. 장도리 같은 공구는 말려서 사용하면 되지만, 전기를 이용해야 하는 기계는 사용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다. 설비 업체 직원은 "침수 피해 입은 집을 수리해야 하는 우리가 정작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라고 한탄했다.
동네는 악취가 진동했다. 하수도가 역류하면서 올라온 오물이 빗물과 섞이며 도로 전체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관악신사시장은 천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수 역류를 피하지 못했다.
한 옷가게 앞에서는 직원들이 직접 손으로 진흙과 오물이 뒤덮인 배수구를 청소하고 있었다. 위에서는 토사가 섞인 빗물이 내려가고, 밑에서는 하수관에서 올라온 오물이 올라와 뒤섞이며 배수 구멍을 막고 있었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배수가 문제가 아니라, 옷이 전부 흙탕물에 젖어 팔 수가 없게 됐다"며 울상을 지었다.
식료품 가게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이틀 전 식료품을 가득 채웠던 냉장고 두 대는 모두 침수돼 냉동 식품이 모두 녹아있었다. 카드 단말 기계도 먹통이 돼, 물건을 사러 온 손님들이 현금이 없을 경우 계좌 이체를 하거나 그냥 돌아가기도 했다. 식료품 가게 자영업자는 "매달 150만원씩 벌어서 모은 6000만원으로 가게 연 지 6개월 됐는데, 냉장고가 고장 나서 팔아야 할 음식 다 버리게 생겼다"라며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데 반 년 치 매출만큼 손해가 나서 마음이 찢어진다"고 호소했다.
지난 8일 시작된 서울과 수도권의 집중호우는 향후 2~3일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80년 만의 폭우로 인명피해와 시설물 붕괴가 속출했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 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는 긴급 비상 태세에 돌입하고 피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관악신사시장의 한 옷가게 앞에서 직원들이 배수 구멍을 뚫고 빗물을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윤민영 기자)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