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9일 창립 70주년을 맞이해 임직원의 지속적인 혁신을 당부했다고 한다. <뉴스토마토> 보도에 따르면 김승연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지금까지의 성공 방정식을 허물어서라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자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칠순에 들어선 한화그룹의 임직원들은 최근 잇단 희소식에 더욱 고무돼 있을 것 같다. 한화디펜스가 생산하는 K-9 자주포는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되다가 지난 8월 폴란드에 대량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앞으로 추가 수주도 예상된다. 최근 고물가와 고환율 고금리 등 ‘3고’에 시달리는 한국경제에 커다란 낭보라고 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기술을 이전받을 민간 기업(체계종합기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지난 7일 선정됐다. 이에 따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사체 제작에서 발사에 이르는 과정을 모두 맡는 민간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하기에 따라서는 '한국판 스페이스X'로 더 크게 날아오를 수도 있다.
한화그룹은 1952년 화약을 국산화하면서 창업된 이래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특히 1990년대에 상당히 뼈아픈 경험도 했다. 경향신문을 인수했다가 빚더미에 올라서는가 하면, 1997년 외환위기 무렵에는 은행의 협조융자로 간신히 연명하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당시 금융단 출입 기자로 일하던 필자는 당시 한화의 부실 경영을 비판하는 기사를 며칠 동안 연이어 썼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의 쓰라린 경험이 약이 됐을까. 한화는 그 이후 나름대로 착실한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했다. 이를 발판으로 대한생명(현재의 한화생명)도 인수했다. 김승연 회장이 창립기념사에서 강조한 대로 “어제의 한화를 경계하고 늘 새로워진” 결과였다. 그러다가 자신감이 넘쳐서인지 2012년 대우조선을 인수하려다가 수천억을 몰취 당하는 등 다시 쓴맛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겠다고 나섰으니 더욱 시선을 끈다. 한화는 대우조선인수를 통해 ‘한국의 록히드마틴’처럼 세계적인 군수업체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그럴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춰진 것도 사실이다. 대우조선이 민수용 선박뿐만 아니라 잠수함 등 해군에서 사용할 군함까지 건조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2조원에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너무 싼 값이라거나 특혜라는 등의 비판이다. 2012년 대우조선을 인수하기로 했을 때의 금액보다 훨씬 줄어들었기에 이런 비판에 힘이 실리는 듯하다.
그렇지만 사실 대우조선은 이미 주인없이 표류해온지 오래됐다. 그러는 동안 매출은 줄고 부채비율은 높아졌다. 공적자금이 수조원 투입됐음에도 회생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끝내 자생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KT나 포스코처럼 ‘공화제형 지배구조’도 생각해볼 수 있으나, 지금 대우조선의 형편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대주주를 찾아주는 것이 시급하다. 그런데 높은 매각가격을 고집하면 영영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느니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 최선으로 여겨진다.
사실 대우조선을 인수해 다시 정상화하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닌 듯하다. 복잡한 노사관계에다 하도급 문제까지 원만하게 풀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노조와의 원만한 협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 가닥이 풀리면 경영 정상화가 의외로 쉬워질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진의 분발이 필요할 것이다. 과거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대우조선에 큰 분규가 있을 때 문제해결을 위해 한동안 거제도 조선소 현장에 상주하기도 했다. 대우조선이 산업은행의 지휘를 받는 동안에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국영기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대우조선을 인수한 후 고 김우중 회장처럼 직접 나서야 할지 알 수 없다. 아마 그럴 각오쯤은 했을 것이다.
김승연 회장의 지적처럼 한화그룹으로서는 이제 새로운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여기서 잘되면 한화를 더욱 강력한 기업으로 키우겠지만, 실패하면 또다시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 어려운 일을 맡아 하려면 남다른 결의가 필요한 법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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