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31일 오전 6시 기준 154명이 숨지고 149명이 다쳐 총 303명의 사상자를 냈다. 사상자 기준 국내 최다 인명 피해를 낸 압사 사고다.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인근인 이태원역 1번출구 앞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가 흰 국화꽃과 함께 놓여져 있다. 사진=뉴시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대규모 관객이 몰리는 공연장에서도 끔찍한 압사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
미국 그룹 뉴키즈 온더 블록의 내한 공연은 지금까지도 내한 공연 사상 최악의 사태로 기록된다.
1992년 2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이 공연에선 1명이 숨지고 70여명의 중경상자가 나왔다. 당시 경기장에 모인 관객은 1만 6000여명. 그룹의 인기곡 순서가 되자 무대 쪽으로 우르르 몰려나온 관객들이 연쇄적으로 넘어지면서 사상자가 나왔다.
사고는 공연장의 수용인원(1만명) 외 공연장 마룻바닥에 6000명이 넘는 10대 관객들을 추가로 입장시킨 점도 문제가 됐다. 수익에만 급급한 주최 측이 최소 경비인력만을 확보한 채, 밀려드는 10대 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일어났다.
당시 문화부장관은 철저한 안전대책이 없는 외국가수의 공연은 불허하겠다고 밝혔으며, 공연 주최자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공연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기도 했다.
1992년 뉴키즈온더블럭 사고 당시 KBS 뉴스. 사진=KBS 뉴스 캡처
1996년 12월 대구 우방랜드에서 열린 대구 MBC 주최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에서도 압사사고가 있었다. 관객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다 앞의 관중을 덮치면서 여학생 2명이 사망하고 부상자 4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같은 해 대구 MBC 공개홀에서는 그룹 H.O.T가 공연하던 도중 팬들이 무대 쪽으로 몰리면서 2명이 실신하고 1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도 있었다.
2005년 10월 MBC 가요콘서트가 열린 경북 상주 시민운동장에서는 관객 5000여명이 공연을 보기 위해 한꺼번에 입장 출입문에 몰리면서 11명이 사망하고 160여명이 부상당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후반 들어서며 공연 압사가 줄었으나, 해외에서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문제로 거론된다. 2010년 7월 독일 뒤스부르크의 ‘러브퍼레이드’ 테크노 음악 축제에서는 공연장 근처의 좁은 터널을 지나던 관객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1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는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콧의 공연 도중 팬들이 무대 앞쪽으로 몰려 8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관객수 통제, 아티스트와 스탭들의 소통 문제, 적절한 안전요원·CCTV·바리게이트 배치 등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는 세계 음악계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는 "사회의 안전규범이라는 것은 인류의 생존 본능과 자본의 누적에 의한 산물"이라며 "(압사사고는 아니지만) 1969년 롤링스톤즈의 알타몬트 공연이나 1988년 건즈앤로지스 도닝턴 파크 공연을 상기해보면, 이후 국내외 데이터들이 누적되면서 동선 설계나 안전조치가 마련돼왔다고 본다. 그러나 스콧의 최근 사고는 주최 측과 관객 상호 간 소통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되새겨줬다"고 말했다.
트래비스 스콧이 출연한 음악 페스티벌 관객들 모습. 사진=AP·뉴시스
군중안전 전문가인 키이스 스틸 영국 서퍽대 방문교수는 스콧 사고 당시 BBC에 "군중 밀도가 1m²(제곱미터)당 4~5명을 초과하면 혼란상태가 빠르게 축적될 수 있으며 특히 지면이 평평하지 않은 경우에는 더 위험이 높다"고 적었다. 국내 의료계 전문가들 의견 종합에 따르면 1m² 당 9~10인 정도 때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비명이 나오는 단계로 본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경우 1m² 당 12~14인 정도가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행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공연법시행규칙 제 5조('공연장의 입석')에 따르면, 국내에선 공연장 정원을 초과한 관람자의 입장을 허가 하고자 할 때 두 가지 기준을 두고 있다. '입석 1인의 점용면적은 0.25m² 이상으로 할 것'과 '입석 부분은 관람석 최후열 의자로부터 후방 3m이내로 하되, 입석부분의 양측과 후방에 폭 1m 이상의 통로를 확보할 것'이다. 시행 규칙대로 입석 1인의 점용면적이 0.25m²일 경우, 스틸 교수가 보고서에서 주장한 안전거리, 1m²당 4~5명 내이다.
고기호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음공협) 이사는 "지금의 국내 공연업계는 과거(뉴키즈 온더 블록의 내한 공연 무렵)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며 "공연장 별 명확한 입장인원 제한 기준이 있고 재해대처계획 신고와 안전신고를 거치는 만큼, 압사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극히 적다. 주최 측이 없는 행사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말했다.
김작가 평론가는 "8만 규모의 대규모 관객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가 물 흐르듯 쪼르륵 빠져가는 식의 해외 동선 체계와 안전 시스템을 빠르게 도입하면서, 국내 공연업계 역시 10년 전에 비해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스탠딩 존 역시 구역을 나누거나 돌출형 무대를 도입하는 식으로 안전 사고 가능성을 낮추는 식의 설계 또한 정교해지고 있다. 다만, 스콧 때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결국 소통 문화가 안전 시스템과 완벽히 결합되는, 한 끗 차이 또한 중요하다"고 봤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