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재훈 기자] 국내 전자업계 주력 사업 판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등의 영향을 제외하고도 '전장' 사업이란 새 먹거리로 무게추가 이동하는 분위기다.
각 기업의 실적에도 이같은 흐름이 감지된다. 이는 전동화 시대에 발맞춰 전자·부품 개발 능력을 응집시키고 그룹 주력 사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066570)에서 전장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부문의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45.6% 증가한 2조3454억원으로 분기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61억원으로 사상 첫 흑자를 낸 지난 2분기(500억원)에 이어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영업이익률은 전분기 2.5%에 이어 3분기 4%를 넘어섰다.
LG전자 VS부문은 텔레매틱스·디스플레이 오디오·내비게이션 등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제품과 모터, 인버터 등 전기자동차용 구동부품, 자율주행 부품, 자동차 램프 및 보안용 SW를 생산·판매·제공하고 있다. 비중은 수주 잔고 기준 인포테인먼트가 약 60%, 전기차 부품이 20%를 차지한다.
LG전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탑재된 디지털 콕핏 콘셉트. (사진=LG전자)
LG전자 전장 사업 수주 잔액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김주용 VS경영관리담당 담당은 지난 28일 열린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말 수주잔액 기존 예상치는 65조 원 수준이었는데 3분기 신규 수주 증가와 환율 영향이 더해져 80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며 "전기차 시장의 높은 성장과 LG마그나 EPG 조인트벤처(JV) 효과로 전기차 부품 수주 잔액 비중은 향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수주 잔액은 거래처로부터 주문을 받은 후 납품 대기 금액을 뜻한다. 수주 기반 장기 사업으로 꼽히는 전장 사업에서도 미래 성장을 가늠하는 지표로 쓰인다.
LG전자는 2013년 처음 전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2015년 4분기(50억원)를 제외하고 지난 2분기까지 25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내왔다. 매출도 VS부문만 놓고 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30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십조원의 수주 잔액을 기반으로 당분간 매분기 실적 신기록을 경신할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앞서 LG전자는 2018년 오스트리아 차량용 조명업체 ZKW를 1조4000억원에 인수했으며 지난해 7월에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마그나와 함께 합작법인 'LG마그나'를 설립하는 등 전장 사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왔다.
삼성전자(005930)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전장사업 자회사 하만은 올 3분기 매출액 3조6300억원, 영업이익 31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51%, 106.7% 늘어난 수치로 또 한번 최대 실적을 경신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하만을 9조400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하만은 디지털 콕핏, 텔레매틱스, 카 오디오 등 전장부품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하만의 전세계 디지털 콕핏(계기판, 대시보드, 핸들 등을 포함한 차량 내부 운전 시스템) 시장 점유율은 올 상반기 기준 25%에 달한다. 신형 자동차 4대 중 1대가 삼성전자 하만의 제품을 탑재했다는 의미다.
하만은 최근 텔레매틱스 분야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텔레매틱스는 무선통신과 GPS 기술이 결합돼 자동차 내에서 다양한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치다. 하만은 지난해 BMW와 공급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도요타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에서는 도요타와의 계약 규모를 1000억원대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회장 자리에 오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행보에서도 전장 사업 확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회장은 지난 6월 유럽 출장에서 유럽 하만을 방문한데 이어 9월 중남미 출장에서는 하만 멕시코공장을 방문했다. 이 회장은 당시 "자동차 업계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며 전장산업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삼성그룹 싱크탱크인 삼성글로벌리서치(구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올해 전장사업 관련 팀을 신설하고 연구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는 부분도 일맥상통한다.
전문가들은 향후 이같은 산업 간의 경계가 붕괴되는 동시에 융합산업 형태의 구조로 변모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김필수 한국전기차협회 회장은 "점차 자동차, 전자 등 산업의 경계가 무너져가고 있다"며 "특히 이제 전기차를 중심으로 미래 모빌리티라는 큰 개념을 두고 융합되면서 전장사업부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향후 AI 알고리즘 등 부가가치가 높은 영역도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로 급부상할 것"이라도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전세계 전장 사업 시장 규모는 2024년 4000억 달러에서 2028년 7000억 달러(약 910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재훈 기자 cjh125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