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간의 신체 기관으로부터 나오는 독특한 창작 발성은, 우주 유일 지구 고유의 초록빛 같은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 2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날치 신작 공연 '물 밑'을 보고 나오면서다.
'찌르르르르', '뚜루루루 낄룩', '어어리히 이 이히' 같은 원초성을 뿌리에 둔 소리들은 몸 속 잠자던 세포들을 깨우듯 기괴하고 현란했다. 어쩌면 이런 창작들이 인간 스스로를 각인하게 하는 존재론적 창(窓)이 아닐까.
'범 내려온다' 신드롬의 주인공 이날치가 돌아왔다. 이번엔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는 천문학자의 이야기'다.
전작인 1집 '수궁가' 성공 이후 판소리 다섯 마당 중 다른 작품을 활용할 것이란 예상을 깼다. 박정희 연출이 쓴 창작 텍스트를 바탕으로, 이날치 멤버들은 새로운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었다.
리드미컬한 두 대의 베이스 라인과 드럼을 축으로, 이번에는 소리꾼들이 직접 건반과 서걱대는 소형 타악기들을 주무르며, 한층 더 록적이고 사이키델릭한 실험 세계를 펼쳐 낸다.
시작은 앙리 마티스 '춤'처럼 둥그렇게 몰려든 연주자와 소리꾼들. 암전 무대 위 '또롱' 거리는 타악기들을 교차시키며, 이들은 순식간에 현실과 판타지를 뒤섞는 미장센을 만들어 냈다.
천문학자의 입을 빌려 전하는 것은 고갱이 던졌던 화두,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다.
"인공지능도 아티스트가 돼 그림을 그려다가 인간들과 경쟁하는 (중략) 이런 시절에..." 천문학자는 생명의 근원을 연구하다, 어느 가을 스스륵 잠에 든다.
꿈에서 힌트를 얻는다. "푸른 물이 온 천지 흘러 하늘이 물인 것 같은 세상"은 그가 찾던 생명의 근원, 붉은 행성이다.
공연은 이를 찾아 나서는 천문학자의 여정을 긴장감 있게 뒤쫓는다. 절제된 조명 연출 뒤로 연주와 소리, 침묵이 뒤엉키며 천문학자의 공감각적 심상을 실어 나른다.
지난 2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날치 신작 '물 밑'. 사진=LG아트센터
속사포 아니리(판소리에서 말로 전하는 이야기로, 창과 대비되는 개념)는 랩 같고, 의성어들을 굴곡지고 풍성하게 하는 창의 시김새는 마티스의 작품만큼 동적이다. 소리의 에너지들은 일렁이는 웅덩이처럼 자꾸만 부풀어갔다.
4번 곡('쑤쑤쑤쑤: 길을 헤매다 숲지기와 만나다')에서 두드러지는 신스팝스러운 건반들의 몽환적 연주, 6번 곡 갑작스레 공연장 전체가 암전되고 등장하는 현장 리포터의 속보 연결 같은 돌발 흐름과 콘셉트는 '현대적 팝을 지향하는' 이날치의 음악관과 연결되는 지점이었다. 마지막 생명의 근원을 찾고 외치는 피날레곡 '히히 하하: 새롭게 탄생하다'에서 쏟아지는 의성어들의 향연과 멤버들이 개구리처럼 튀어오르는 연출도 특기할 만 했다.
다만, 귀에 쏙 꽂히는 '한 방' 훅의 부재는 아쉽다. 공연을 보고 나선 관객들도 "특이하다"는 반응과 "난해하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범 내려온다'보다 소리의 실험성을 지향했으나, 조금 더 대중으로 향하는 밸런스가 다듬어지면 어떨까 싶었다.
30일까지 열린 공연에는 2500여 관객이 몰렸다. 이 공연기간 선보인 11곡의 '초안(初案)'은 내년 발표할 2집 '물 밑'에 다듬어져 수록된다.
지난 2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날치 신작 '물 밑'. 사진=LG아트센터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