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경찰청이 여론 동향을 조사한 문건이 공개되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부가 사태 수습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무마 대응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중행동,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 시민사회 여론동향 문건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 31일 경찰청이 '정책참고자료'라는 문건을 작성해 대통령실에 보고한 내용을 보면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정부 규탄 논리를 모색하고 있다는 내부 여론동향이 파악됐고, 정권 퇴진까지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처를 마련하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말했다.
전국민중행동·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이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대통령 사과와 책임자 경질을 촉구하고 정부의 시민사회단체 사찰행위를 규탄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이틀 뒤인 지난달 31일 경찰청은 시민단체와 언론계를 자체 조사해 진보성향 단체 등이 정부 규탄 여론 형성에 주력하고 있고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 보도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정책 참고 자료'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자료에서는 시민단체 전국민중행동이 이태원 참사를 '제2의 세월호 참사'로 연계해 정부를 압박하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된 사망자가 여성이 더 많다는 점을 근거로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정부의 반 여성 정책 바판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문건에 적힌 단체들은 공개된 내용과 같은 논의와 입장 등을 낸 적이 없다며 허위, 날조된 사실이라고 반발했다.
박성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경찰청 정보당국자가 허무맹랑하게 새빨간 거짓말로 날조해낸 내용으로 지금까지 저희는 입장발표를 유보해왔고, 상황을 살피며 행동도 신중하게 해왔다"며 "경찰청에서 프레임을 짜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현수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국장도 "문건에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애도 성명 내용을 거론하면서 당장 여성안전 문제를 본격 꺼내들기 어렵지만 여가부 폐지 등에 활용할 거라고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 거짓 보고서가 작성됐다"며 "여성연합은 경찰과 접촉한 사실이 없고 그런 내용도 검토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청은 마치 여성연합이 정치적으로 이태원 참사 내용을 이용하려는 것처럼 악의적 프레임을 씌우고 거짓 문서를 작성했다"고 규탄했다.
여론동향 조사가 정부의 지시를 통해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이 문건이 경찰이 자발적으로 생산한 문건이라고 믿을 수 없다"면서 "정부는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원인규명과 국가 책임을 밝히는데 공권력을 써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넘어설 지 지지율을 떠받칠 수 있을 지 고민 등을 경찰을 통해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참사의 진상을 피해자 중심으로 규명하는 요구도 이어졌다. 참여연대 등 25개 노동·종교·시민사회 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참사에 대한 수사는 독립적이고 신뢰 가능하고 투명해야 한다"며 "현재 경찰이 경찰을 수사하는 것은 신뢰를 획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단체들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수사와 조사가 필요하며, 조사와 재발방지대책 마련 과정에서 피해자와 시민들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3일 오전 서울 참여연대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와 정부 대응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