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수) 토마토Pick은 최근 석유 증산 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 간의 갈등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석유'를 매개로 80년간 좋은 관계를 이어가던 사우디와 미국이 '석유'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유럽에서는 독일, 중동에서는 사우디가 바이든 행정부를 화나게 하는 중입니다.
사우디, 미국과 ‘헤어질 결심’(?)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포럼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사우디가 미국 편이냐 아니냐’는 질문을 계속 듣는데 ‘우리는 사우디와 사우디 국민 편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인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아랍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인 사우디가 독자노선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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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사우디의 외교 역사
미국과 사우디는 1945년부터 약 80여년 간 상호 호혜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945년 루스벨트 대통령과 사우디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1970년대 '페트로 달러 시스템'을 정착시키면서 미국은 달러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고, 사우디는 안보 환경을 제공받아 왕조를 안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페트로 달러 시스템이란 '석유를 구매할 때는 반드시 달러로만 한다'는 제도인데요. 이 시스템으로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면서 미국은 세계 금융패권을 거머쥐게 됐습니다. 사우디 역시 미국 군사력의 도움을 받아 왕조를 안정시키고 오일머니를 앞세워 강대국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수면 위로 올라온 갈등
올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 유가는 그야말로 훌쩍 뛰었습니다.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금지한 영향도 컸습니다.
☞관련기사 유가가 폭등하고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월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살만은 대규모 석유 감산을 주도하며 뒷통수를 쳤고, 바이든은 사우디를 향해 “관계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는 상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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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감산 놓고 티격태격
표면적인 갈등 원인은 석유입니다.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가 10월 초 대규모 감산 결정을 내리자 미국은 "도의적, 군사적으로 러시아를 도운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관련기사 이에 산유국들은 "경제적인 이유"라며 항변했는데요. 칼리드 빈 살만 사우디 국방장관은 "OPEC+의 만장일치 감산 결정이 순전히 경제적 이유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고 오만, 이라크, 쿠웨이트 등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습니다.
☞관련기사 오히려 사우디는 "미국이 감산 결정을 한 달 미뤄달라더라"고 폭로하며 미국 정부가 중간선거를 의식해 감산 보류를 요청했음을 시사했습니다.
☞관련기사 이에 미국은 "OPEC+ 감산 결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며 "그래서 오히려 정치적"이라고 반격했습니다. 요약하면 산유국들이 충분히 증산을 할 여력이 있음에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감산 결정을 내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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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뒷통수 때린 사우디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는 바이든을 더욱 열받게 합니다. 바이든이 사우디를 방문했던 이유는 양국 간에 이미 석유 증산을 비밀리에 합의해놓고 사인만 하러 간 건데요. 사우디는 석유를 하루 200만 배럴만 감산한 겁니다. 이때 미국은 사우디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의심합니다.
☞관련기사 뒷통수를 맞은 바이든은 유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미국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합니다.
☞관련기사 그러자 사우디는 바이든의 전략비축유 방출을 비판하면서 중국과 에너지 협의를 맺고, 일대일로 사업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수준까지 나아갑니다.
☞관련기사 바이든 입장에서는 정말 열받는 상황이죠.
천천히 쌓여온 갈등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1970년대 제 4차 중동전쟁에 이은 오일쇼크 등 여러 이유로 흔들린 적은 있습니다만, 돈독한 관계였습니다.
-이라크 전쟁 : 본격적으로 악화된 시기는 사우디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면서부터입니다.
-셰일가스 혁명 : 2008년 오바마 정부가 '셰일가스 혁명'으로 에너지 독립을 시도하면서 점점 소원해졌습니다.
-카슈끄지 사망 사건 : 사우디 출신 워싱턴포스트 기자 자말 카슈끄지는 반정부적 성향을 가진 언론인으로, 빈 살만 왕세자를 비판해온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카슈끄지는 2018년 10월 2일 자국 총영사관에 들어간 후 실종, 후에 사망한 채로 발견됐는데 그 배후로 빈 살만 왕세자가 지목됐습니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초 공식석상에서 사우디를 "국제적 왕따"를 만들겠다고 발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때부터 미국과 사우디는 사실상 협력관계에서 앙숙으로 돌아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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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 : 바이든 행정부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라 불리는 이란과의 핵합의도 사우디 측에서는 눈엣가시입니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가 유럽 등 서방을 주축으로 이란과 맺은 핵합의로 인해 이란에 대한 각종 제재가 풀리면서 사우디, 이스라엘 등 우방국의 큰 반발을 샀습니다. 이후 트럼프 정부가 2018년 일방적으로 탈퇴했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다시 이를 되살리려고 협상에 돌입했습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앙숙인 이란이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길을 열어주는 미국이 좋을리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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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바이든은 지난달 19일 미국 기업들에게 사우디아라비아 사업 확장 자제를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습니다.
☞관련기사 바이든이 그러거나 말거나 140개가 넘는 미국 기업과 기업인 400명이 사우디가 주최하는 미래투자이니셔티브에 대거 참석했습니다.
☞관련기사 현재 한국은 사우디에 무려 5000억 달러, 한화 약 710조원에 달하는 네옴시티 수주를 위해 지원단을 파견한 상태입니다.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크게 영향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대놓고 바이든 무시하면 곤란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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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는 미국과 헤어질 수 있을까?
사실 사우디는 미국과 척지고 살 수 없습니다. 사우디 독자적으로 이란을 상대하기는 벅찹니다. 인구도 이란의 1/3 밖에 안되고, 병력, 재래무기도 이란에 비교가 안됩니다. 이란 침공설이 나오자 잽싸게 미국과 정보를 교환한 것도 사우디가 처한 현실을 보여 줍니다.
☞관련기사 그렇다고 사우디가 접근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줄까요? 러시아, 중국, 이란은 ‘반미’를 기치로 뭉친 나라들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사우디 편을 들어준다는 건 택도 없는 소리죠. 사우디의 ‘헤어질 결심’은 실행에 옮기면 그 결말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그래서 실행에 옮기기 힘들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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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줄타기 외교 상황
현재 사우디의 줄타기 외교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러시아, 중국과 밀착 : 왕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안보 우산이 필요한 사우디는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자 러시아, 중국과 밀착하기 시작했습니다.☞관련기사
-석유수출대금 위안화 결제 검토 : 지난 3월 석유수출대금을 달러가 아닌 위안화 결제(페트로 위안화)를 검토하는가 하면, 중국과 에너지 협력 강화에 대해 합의했습니다.☞관련기사
-우크라이나 인도적 지원 : 그러면서도 사우디는 우크라이나에 6000억원의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히며 서방 세계에서 완전히 이탈하지 않는 입장을 보여줍니다.☞관련기사
-미국과 확전 자제 :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신경전을 이어가면서도 확전은 자제하는 분위기입니다.☞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