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만개하는
6월도 아니건만
‘장밋빛 기대'가 만발했다
. 겨울의 초입
11월에 한국을 뒤덮은 장미 내음을 몰고온 주인공은
’사우디 왕세자
‘였다
.
무함마드 빈 살만 알아수드. 줄여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겸 총리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 개발 비전 2030의 일환인 ‘네옴시티’라는 최첨단 신도시 건설 계획에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 오너들이 한자리에 모여 ‘빈 살만’을 영접했다.
네옴시티는 석유에 의존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경제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 1조 달러를 들여 홍해 인근에 서울의 44배 크기에 달하는 최첨단 신도시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1조 달러는 현재 환율로 따져 1355조원 가량이다.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2023년 한국의 국가예산(본예산 기준)이 639조원이다. 우리나라 2년 살림살이가 훌쩍 넘는 금액이다.
네옴시티에 쓰일 총 사업비는 5000억달러(약 677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길이 170km에 달하는 직선도시를 세우고, 바다 위에 뜬 팔각형 산업단지(옥사곤)와 산맥과 호수가 어우러진 산악관광단지(트로제나)를 만든다는 것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네옴시티를 구상하고 현실화를 이끄는 핵심이다. 이번 방한에서 대기업 등과 290억 달러(약 38조8000억원) 규모의 투자계약 및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여기저기서 ‘제2의 중동붐’을 기대하는 목소리와 찬사가 쏟아진다. 내수 경제력이 빈약한 한국은 개방을 통한 수출에 목마를 수밖에 없는 소규모 개방경제 구조다.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허덕이는 내수 경제가 ‘빈 살만’을 통해 돌파구를 찾은 셈이니, 때아닌 ‘장미의 계절’에 희망과 ‘국뽕’이 차오르지 않으면 이상할 판이다.
이해는 간다. 대기업을 비롯한 산업계에서는 ‘네옴시티’가 성장의 희망동력으로 떠오른다. 증권가에서는 ‘네옴시티’ 수혜주가 판을 친다.
이미 다들 마음은 ‘네옴시티’로 달려갔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마저 11월 들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 ‘네옴시티’는 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달콤함 뒤에는 독이 스며있다. 기업들이 꼼꼼하게 양해각서를 비롯한 투자계약서를 살폈겠지만, ‘들뜬 마음’에 세밀함을 놓치지는 않았을지 노파심이 든다.
사업은 자선이 아니라 ‘거래’다. 서로 손해보는 일없이 최선의 이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은 사막의 거친 모랫바람을 걷어가며 살아왔다. ‘제2의 중동붐’을 자선사업처럼 다른 민족에게 인심쓰듯 퍼줄 듯 하지는 않을 듯하다.
모처럼 들려온 희소식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은 아니다. 손자병법 행군편에는 이런 병법이 적혀 있다.
‘무릇 아무런 고려없이 상대를 쉽게 보는 자는 반드시 상대에게 사로잡힌다.’ '국뽕'에 들떠 상대를 쉽게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승주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