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아무리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위성과 우버 택시의 신경망이 우크라이나를 수렁에서 건져냈더라도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그리드가 파괴되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전력망이 있어야 시민이 휴대폰을 충전하고 통신을 유지하며 드론을 조종할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약10여일 전부터 러시아는 멀웨어(악성코드)를 통해 발전소와 송전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사이버 공격을 감행했다. 개전 전에 키이우를 포함하여 도시의 약 200만 가구를 정전에 빠뜨리려는 의도였다. 이 공격을 막아낸 당사자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진과 체코의 보안업체 이서트였다. 지난여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러시아의 악성 코드의 종류와 공격 방법, 방어 작전을 상세히 밝히는 특별보고서를 발간했다.
병력과 무기, 방공망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동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 군이 전과를 거둔 중요한 요인은 정보와 지식에서의 우세였다. 이 역시 민간 기상관측 위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였다. 오늘날 맥사 테크콜로지 등 상업 지구관측 위성들은 과거 군사위성만이 탑재하고 있던 개구형합성레이더(SAR)라든지 광학영상을 통해 군사 위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관측 영상을 확보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 상공을 촬영한 수천 장의 영상을 매일 전달받은 미국의 국가정찰국(NRO)은 최신의 영상과 이전의 영상에서의 차이점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한다. 그 변화 요인을 분석하면 러시아 군의 이동은 물론 전반적인 의도도 예측할 수 있다. 미군은 이 분석 데이터를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에 전달하며 군사작전을 조언한다. 이번 전쟁에서는 기업과 군이 융합된 새로운 정보공동체가 출현했다.
지난 2월6일(현지시간) 폴란드 남동부 제슈프 공항에 미 제82공수사단의 장비와 병력을 실은 미군 수송기 한 대가 착륙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기업이 전면에 나서서 기술을 지원하는 전쟁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분쟁이 일어나도 미국이 군을 파병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미군과 나토군이 아무리 우크라이나에 많이 파병되었더라도 기술기업이 거둔 성과를 절대 달성할 수 없다. 이제는 전쟁의 수행 주체가 바뀌고 있다. 전쟁이 군대의 독점 영역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중이다. 군대를 지원하지 않고 기술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분쟁에 개입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과 빅테크 기업이 전쟁에 열광하고 경쟁적으로 참전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전쟁터는 어떤 도덕규범과 법적 규제도 없이 오직 효율성만 추구한다. 이런 전쟁터야말로 새로운 기술의 거대한 실험장이며 기업은 행동의 자유를 확보한다. 여기서 거둔 기술적 성취를 향후 새로운 기술의 플랫폼을 선점하는 사업으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기술기업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초독점 기업으로 도약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일론 머스크의 위성 광대역 서비스의 효과성이 입증되면서 앞으로 그는 전 세계에 인터넷을 공급하는 황제 기업으로 등극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지난 4일(현지시간) 도네츠크주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작전 중 드론을 날리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아직도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은 인터넷을 사용해 본 경험이 없다. 작년에 발간된 미 전략연구센터(CSIS)의 보고서 <글로벌 네트워크 2030>에 따르면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40억의 인구를 디지털 경제로 편입시키려면 향후 10년 동안 매년 2800억 달러의 통신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고 그와 별도로 휴대폰과 노트북과 같은 전자 기기도 보급해야 한다. 실제로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는 남아공과 가나에 디지털 문해력(literacy)을 제공하기 위해 디지털 인프라와 전자 기기를 보급했다. 그 결과 남아공의 광고시장의 70%를 페이스북이 가져갔으며, 물류산업 수입의 75%를 우버 택시가 거두었고 토종기업은 초토화되었다. 이들 국가에 빅테크 기업에 의한 초독점 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의 얼굴로 등장했다. 디지털 문해력이 민주주의와 창의성을 증진하는 의미 있는 사회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유네스코의 자체 평가도 나왔다.
1990년의 걸프전쟁이 위성항법과 인터넷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세계화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면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인공지능과 대규모 데이터 통신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초독점 사회를 알리고 있다. 이는 30년 만에 찾아온 문명의 전환이다. 전쟁이 바로 그런 미래사회로 가는 가속 페달이다.(끝)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