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토마토 ESG 포럼>이 지난 21일 성황리에 끝났다. 신축년 세밑 혹한과 눈보라에도 포럼장 열기는 사뭇 뜨거웠다. 포럼에 참석한 정부·공공기관·학계·기업 등 각계 인사들은 눈을 빛내며 시종일관 진지했다. 아직은 ESG가 낯선 이가 많은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이야 말로 '오피니언 리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사전적으로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로 정의된다. 2000년 UN 미래보고서에서 처음 제시됐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2004년 UN 글로벌 콤팩트와 스위스 정부 주도로 진행된 'Who Cares Wins'를 ESG에 대한 첫 국제적 논의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역시 주목할만 한 공론화를 이끌어 내는 데 실패했다.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배구조를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ESG의 개념이 '공자왈 맹자왈'식으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이러다가 또 말겠지'라는 생각이었다.
ESG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전 세계 CEO들 머리에 직접 꽂아버린 사람은 래리 핑크였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CEO다. 그는 연례적으로 고객들인 전세계 CEO들에게 서한을 보내는데, 2020년 서한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ESG 등급을 획득하지 못하면 블랙록의 투자를 받지도, 하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역시 돈이었다. 투자가 필요한 전 세계 유수 기업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같은 주제로 정부나 국제기구, 환경단체 등을 대해왔던 그동안의 태도와는 판이했다. 자산운용사 CEO가 ESG를 강조하고 나선 것을 뜬금없다고 보는 시각이 무색하게, 래리 핑크가 2022년 서한에서도 밝힌 '기업들의 장기적 지속가능성 확보'를 추구하기 위한 ESG는 이제 '절대적 어젠다'가 되어버린 듯 하다.
더 나아가, 소박한 소견으로만 봐도 향후 국제 정세는 ESG의 영향을 크게 받을 모양이다. 기업들만의 숙제로 치부되던 이 과제는 국제사회를 넘어 이미 우리 지역 공동체와 대학·사회단체·민관 조직에 깊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기본적 틀 안에 대부분 포섭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통과 공존을 통한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ESG의 목표 앞에서는 국경과 조직의 구분이 무의미 하다.
정부와 기업, 민간과 관의 행위가 결합하며 시민이나 환경을 위협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1990년대 말 이른바 '위험사회'를 등장시킨 사회적 참사들의 면면만 봐도 그렇다. 이 때문에 ESG를 '파괴된 공동체의 복원'이라 새롭게 정의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주장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요컨데 지금의 시대는 ESG를 장기적인 주요 국가정책으로 수립해야 할 때다. <2022 토마토 ESG 포럼>에서 '위험사회 탈피를 위한 ESG 전략'을 주제로 지정한 것은 그래서 매우 적절했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또 있다. ESG 입법화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움직임이다. 특히 EU의 움직임이 주목되는데, EU집행위원회는 일찌감치 ESG법률안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탄소 다배출 기업을 규제해 탄소 배출을 제한하겠다는 것이 내용이지만, 그 이면에는 외국 기업에게 '탄소관세'를 물려 수익을 얻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세 그 자체가 외국기업의 진입을 막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미국도 달라보이지 않는다. ESG 후발 국가들은 EU와 미국의 ESG법안을 그대로 채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세계 역사상 '자원의 무기화', '식량의 무기화'에 이은 이른바 'ESG법안의 무기화' 시대가 오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당장 '래리 핑크의 서한'의 예를 보라.
우리나라 중견·중소기업들도 문제다. 대기업이야 막대한 자금을 들여 ESG시대를 준비해온 지 오래다. 그러나 나머지 기업들은 ESG를 아직도 '환경보호' 쯤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제적으로 ESG 장벽이 높아지면, 대비하지 못한 기업들은 수출기회 자체를 아예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 역시 전문가들의 우려다. 결국 대기업들만 살아남고 중견·중소기업들은 고사하거나 대기업의 하청업자로만 전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아직 공무원들 중에는 ESG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은 매우 슬픈 현실이다. 정부는 서둘러 경쟁력 있는 ESG법률안을 정비하고 다른 나라에도 이를 적용·전파해야 한다. 합리적이면서도 조밀한 정책으로 우리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부처부터 ESG에 입각해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다가 또 말겠지'라는 방심은 안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향과 정책이 바뀌어서도 안 된다. 그러다가는 정말 늦어버릴 지 모른다.
최기철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