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힘든 한해였다. 금리는 치솟고 살림살이는 쪼그라 들었다.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전해진 소식은 국민적 우울감을 증폭시켰다. 연초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수십만명의 사상자와 이재민을 양산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해 용산에 둥지를 틀었고, 금리를 이기지 못한 집값은 역대급 하락을 이어갔다. 잇단 북한의 도발에 한반도의 긴장을 높아졌고, 루나와 테라 폭락으로 가상화폐 시장도 폭격을 맞았다. 데이터센터 화재에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일상을 마비시켰다.
돌덩이에 짓눌린 무거운 삶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누리호와 다누리호의 연이은 성공은 우주강국에 성큼 다가서는 발판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①이태원 참사…또다시 국민 지켜주지 못한 국가
10월29일 오후 10시15분,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에 몰려 354명의 사상자(사망158명·부상196명)가 발생한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3년 만에 실외 마스크 착용이 해제됐고,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이태원에 방문하면서 벌어졌다.
참사 희생자들은 폭 4m도 안되는 경사진 골목길에서 위아래로 이동하려다 서로 뒤엉켰다. 양쪽 통행이 안되는 상황에서 행인이 겹겹이 둘러싸이면서 피해가 커졌다.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한 대규모 참사에 온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사망자 87%가 20·30대 젊은 층이라 안타까움을 더했다.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 등 1차 재난안전 기관은 핼러윈 기간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지만 미흡한 대처로 참사 예방에 실패했다. 특히 경찰에 참사 발생 4시간 전쯤인 오후 6시34분부터 11건 이상의 압사 우려 112 신고가 접수됐으나 대응하지 못했다. 경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참사 원인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국회는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있다.
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 (사진= 뉴시스)
②끝나지 않은 전쟁...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가 2월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의 이유 중 하나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대에 따른 안보 위협을 내세웠지만, 서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하지 않은 공격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에 나섰다. 결국 나토를 중심으로 한 서방이 결집하기에 이르렀고, 전쟁의 양상도 달라졌다.
초반엔 러시아가 파죽지세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내달려 전쟁이 곧 끝날 듯 보였으나, 저항은 거셌다. 러시아는 침공 초기인 2월 말~3월 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제2도시 하르키우 주변을 포위하면서 승리를 눈앞에 두는 듯했다. 하지만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과 원조를 받은 우크라이나는 4월 키이우에서 상대를 격퇴했고, 9월 북부 하르키우와 11월 남부 요충지 헤르손을 탈환했다. 현재 양국은 돈바스 지역에서 치열한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단기간 내에 러시아 승리로 끝날 것이란 당초 전망과 달리 우크라이나가 선전하면서 전쟁은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길어진 만큼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이 전쟁으로 최대 10만명 이상의 목숨이 희생됐다.
(사진) 뉴시스
③윤석열 정부 집권…용산시대 개막
검찰총장 출신 '0선'의 정치 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3·9 대통령 선거에서 48.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잇단 선거에서 연달아 참패하던 국민의힘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의 격차는 0.73%포인트로 헌정사상 최소 득표 차 승리였다.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내세운 윤 대통령은 5월10일 취임하면서 기존 청와대를 떠나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실 집무실을 옮기며 '용산 시대'를 열었다. 청와대는 일반 국민에 개방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11일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한미는 글로벌 공급망 구축 등 경제 안보협력에 의견을 함께했다.
용산 시대가 열리면서 취임 다음 날부터 출입 기자들과 각본 없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출근길 문답(약식회견)도 진행했다. 하지만 61차례 진행된 출근길 문답은 지난 11월 MBC와의 갈등으로 중단됐다.
서울 용산에 마련된 대통령실(사진=뉴시스)
④누리호·다누리 연이은 성공…우주강국 '성큼'
6월21일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발사체(KSLV-2)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누리호는 지난해 10월 진행된 1차 발사에서 위성 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안착시키지 못하며 최종 실패를 했다. 2차 발사 역시 발사 준비 과정에서 기상악화와 기체 결함 등으로 두 차례 발사일정이 조정되기도 했다. 누리호의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7번째 우주 발사체 보유국이 됐다.
이로부터 약 50일 후 국내 최초 달 탐사선 '다누리'가 우주로 향했다. 스페이스X의 '팰컨9' 발사체에 실려 이륙한 다누리는 5개월에 이르는 항행 끝에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내년 1월부터 다누리는 달 궤도를 돌며 탐사 임무를 수행한다.
한편, 정부는 누리호와 다누리의 성공 발사를 발판으로 본격적인 우주 강국을 위한 행보에 나선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과제에 포함된 우주항공청 설립 등을 포함해 2045년까지의 우주 개발 로드맵을 수립했다.
(사진) 뉴시스
⑤고금리에 무릎 꿇다...집값 역대급 하락
올 한 해 국내 주택 시장은 고금리, 경기 침체 여파로 전국적으로 거래 냉각이 이어지며 역대급 하락세를 나타냈다. 전국 아파트값, 전셋값, 거래량, 청약 경쟁률 등 부동산 지표 전반이 관련 기관 집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로 주택 시장은 빠른 속도로 침체되는 양상을 보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값은 1월부터 지난달까지 누적 -4.79%, 같은 기간 전셋값은 -5.23%를 기록했다. 또 청약 시장의 전국 1순위 경쟁률은 평균 8.5대 1로 지난해 19.1대 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올 한 해 가파른 속도로 기준금리가 인상되며 주택담보대출, 중도금대출 등 비용 부담이 증가했고 최근 수년간 집값 폭등에 따른 피로감까지 더해지면서, 전반적인 시장 흐름이 수요층 우위 시장으로 반전됐기 때문이다.
상황 타개를 위해서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책의 실행력이 담보되고 기준금리가 하향 조정돼 매수심리가 살아나야 한다. 하지만 최소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 인상이 예고됐다는 점에서 주택 시장의 침체는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진) 뉴시스
⑥가상화폐 시장의 비극...루나테라 폭락사태
지난 5월 글로벌 3대 스테이블 코인인 루나·테라의 가치가 급격히 폭락하면서 대규모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 1달러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가 1달러 가격을 지키지 못하고 시스템이 무너져 내리면서 테라의 자매코인인 루나의 가치도 같이 폭락, 일주일만에 시가총액 50조원이 증발했다.
당시 유동성 위기가 가상자산 업계로 번지며 '뱅크런(대규모 자금 인출)'이 발생했고, 글로벌 각국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 수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국내 수사당국은 핵심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수사 중이다.
(사진) 뉴시스
⑦데이터센터 화재에 카카오 서비스 '먹통'
10월15일 SK㈜ C&C 판교 데이터센터에 불이 나면서 해당 데이터센터를 이용하는 카카오 서비스 전체가 먹통이 됐다. 카카오톡은 물론 카카오T, 카카오페이 등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길게는 사흘 동안 이용할 수 없게 되면서 국민들은 일상이 마비되는 큰 불편을 겪었다. 화재와 서비스 장애는 모두 안일한 재난 대비의 결과물로 판명났다.
데이터센터 운영 주체인 SK㈜ C&C는 배터리실과 보조전원장치를 제대로 분리하지 않았고, 카카오는 데이터센터의 완벽한 이중화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에 카카오는 남궁훈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회 재발방지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동시키며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카카오 먹통 방지법'으로 불리는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 등을일사천리로 마련했다. 이동통신사 등 기간통신사업자 뿐 아니라 네이버·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도 데이터센터 다중화 등 재난 대응 의무를 지게 됐다.
(사진) 뉴시스
⑧미 연준 고강도 긴축시대 개막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 차질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식량 가격 등이 급등하면서 올 한해 전 세계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지난 6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9.1% 오르면서 1981년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고물가를 잡기 위해 강도 높은 긴축을 단행했다. 연준은 3월 2018년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하며 제로금리 시대를 마감했다. 이후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5월 50bp, 6월부터 11월까지 4회 연속 75bp, 12월 50bp 등 올해 들어서만 기준금리를 425bp 인상했다. 이에 따라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125bp까지 벌어지며 2006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역전을 기록했다. 연준은 내년 기준금리 전망을 5.1%(중간값) 수준까지 예상하면서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뉴시스)
⑨중대재해처벌법 시행…사업주·경영 책임자도 처벌
1월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과 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 또는 중대시민재해에 이르게 하면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을 처벌하고, 해당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이 중대재해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 대해 그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다만 해당 법은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기업을 대상으로는 2024년 1월27일부터 시행되며, 상시 근로자가 5명 미만인 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경영계는 경영 책임자 등의 정의와 중대산업재해 또는 중대시민재해의 정의가 모호하므로 이를 구체화하고, 고의·중과실이 없는 중대재해를 면책하는 내용의 규정을 신설하는 등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이를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이라고 주장하고, 아직 시행 1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정 취지 자체를 부정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⑩잇따른 북한 도발…깊어진 한반도 긴장
북한은 올해에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8발, 탄도미사일 67발 등을 쏘면서 무력도발을 이어갔다. 특히 북한은 10월31일∼11월 5일까지 진행된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격렬하게 반발, 11월2일 하루에만 25발가량을 포함해 이 기간 30발 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당시 1발이 분단 이후 최초로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우리 영해에 근접해 떨어졌다. 이 때문에 울릉군에는 공습경보가 내려졌다. 이어 11월18일에는 ICBM '화성-17형'을 고도 6100㎞까지 올리며 최대 성능으로 발사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과 함께 참관한 사실도 공개했다.
12월26일에는 북한 무인기 5대가 5년 만에 남측 영공을 침범했다. 북한은 또 지난 9월에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내용의 핵무력 법제화를 단행했다. 이에 한미 양국도 대북 '확장억제' 강화 차원에서 역시 5년 만에 처음으로 미군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을 동원한 연합군사훈련을 잇달아 실시했다. 동시에 한미일은 독자 대북제재에도 나섰다. 그러면서도 우리 정부는 북한 비핵화 로드맵 '담대한 구상'을 제시하며 대화를 모색했지만, 북한은 “황당한 망상”이라며 이에 응하지 않았다.
(사진)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