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인격도 돈이 될까)‘퍼블리시티권’ 다른 나라는 어떨까

법안 없는 한국, 2005년 '퍼블리시티권' 첫 인정
미국·독일·일본도 판례 통해 권리 인정

입력 : 2023-01-04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우리 법원이 자신의 이름, 얼굴 사진, 목소리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인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한 첫 판결은 2005년 '이영애 사건'이다.
 
당시 탤런트 이영애가 모 화장품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소송에서 재판부는 1심에서 "화장품 회사가 이영애의 '퍼블리시티' 권리를 침해했으므로 1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해당 화장품회사는 계약 만료 후에도 이영애의 얼굴 사진이 들어간 광고물을 직접 사용하거나 다른 회사에 제공했고, 이에 재판부가 이영애의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이후 하급심 판결은 엇갈려 왔다. 2014년 배우 민효린과 가수 유이는 퍼블리시티권을 주장하며 자신의 사진을 무단 사용한 성형외과 의사를 상대로 낸 소송을 냈다. 1심은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며 원고 승소 판결했지만, 2심은 "퍼블리시티권의 의미, 범위, 한계 등이 아직 명확하게 정해졌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로 뒤집었다.
 
배우 이영애. (사진=뉴시스)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논의는 1980년대부터 지속돼 왔지만,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을 사고파는 권리로 볼 수 있냐는 점 등 논란 지점은 여전하다. 남형두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표현의 자유와 충돌 여부나 인격권을 사고파는 개념으로 볼 수 있냐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라며 "법적 안정성을 위해 도입해야 하는 건 맞지만 실제 민법 개정안이 이뤄질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반면 박성필 카이스트 교수는 "현실적으로 개인의 유명세를 아무 대가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례들이 있지 않냐"라며 "이러한 측면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논의가 처음 시작된 미국도 통일된 연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일부 주의 주법에서만 퍼블리시티권을 명문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2021년 4월까지 미국 22개 주에서 법으로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고 있다. 전재림 한국저작권위원회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인격권에 대한 보장 범위를 넓게 해석하고 있어 굳이 입법까지 이어지지 않아도 퍼블리시티권이 보호될 수 있다"라며 "독일과 미국도 사안에 따라 각각 판례를 통해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역시 퍼블리시티권을 인격권의 일부로 인정하고 있다. 독일 연방대법원은 1959년 3월 이름이나 목소리가 상업적으로 이용된 경우에는 일반적 인격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하며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했다. 1989년 5월 함부르크 고등법원 역시 유명 배우가 사망한 이후 그 목소리와 어법을 흉내 내 라디오 광고에 이용한 사건에서도 일반적 인격권 침해를 인정하며 손해배상 판결을 했다.
 
일본도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 다만 판례를 통해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고 있다.
 
일본은 1976년 동경지방재판소는 '마크 레스터 사건'으로 불리는 판결을 통해 퍼블리시티권을 최초로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퍼블리시티권이란 명칭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배우, 가수, 프로스포츠 선수는 자기의 이름, 초상을 이용하여 대가를 얻고 제3자에게 전속적으로 그 이름, 초상을 이용시킬 수 있는 이익을 갖고 있고, 이러한 이익은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된다"며 사실상 퍼블리시티권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강태욱 변호사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인정 여부는 글로벌하게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퍼블리시티권' 자체를 명문화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또 "해당 권리를 입법화하는 게 재산권으로 인정할 만큼 실익이 있는지, 재산권으로 볼 수 있는지 아직 정리되지 않아 관련 논의도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전 선임 연구원도 "퍼블리시티권 도입 이후 표현의 자유 측면도 고려해야 하는 등 추가로 검토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일본의 한 거리.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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