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유라 기자] 유럽의 최고 사법기구가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서 가품이 판매될 경우 중개자 역할을 하는 플랫폼 역시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명품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명품 본고장에서 나온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내 플랫폼에 향한 책임론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유럽의 최고 사법기구인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아마존에서 이뤄진 개별 판매업자의 모조품 판매에 대해 유통사인 아마존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번 판결은 지난 2019년 프랑스 명품 구두 브랜드인 크리스찬 루부탱이 아마존을 상대로 벨기에, 룩셈부르크 법원에 각각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 발단입니다. 각 법원은 EU 최고 사법기구인 ECJ에 지침을 요청했고 지난달 이런 판결이 나온 겁니다.
크리스찬 루부탱은 일명 '레드솔'로 불리는 빨간색 밑창 디자인에 대한 상표권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존에서 레드솔 디자인 특허를 침해한 모조품이 유통되고, 상품 등록과정에서 아마존이 이를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크리스찬 루부탱의 주장입니다. 심지어는 아마존이 광고 상품을 통해 모조품에 대한 소비를 독려했다고 지적합니다.
재판부는 일반 소비자들의 경우 개별 판매자가 아닌 아마존이라는 플랫폼을 보고 구입하기에 이들을 믿고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을 판단 근거로 활용했습니다. 이번 판결을 근거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법원이 상표권 침해 본안 소송에서 명품 브랜드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사진=발란)
특히 이번 판결은 명품 본고장인 유럽의 명품 브랜드가 미국의 대형 전자상거래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 침해 소송으로, 이번 결과로 크리스찬 루부탱이 벨기에, 룩셈부르크 외에 다른 지역에서 추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BBC 등 외신에서는 주요 명품 브랜드들이 아마존을 비롯해 이베이, 알리바바 등 글로벌 이커머스에 상표권 침해 소송을 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디자인 카피, 모조품을 방치하는 플랫폼을 대한 책임론도 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같은 결과는 국내 오픈마켓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최근 한국은 코로나19 이후 보복소비 심리에 힘입어 명품 시장이 호황을 누린 한편 디자인 카피, 오픈마켓 가품 유통 등의 문제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황운하 의원이 특허청에서 제출받은 온라인 위조상품 유통 적발 현황(2019년~2022년 8월)에 따르면 전체 위조상품 거래의 절반 가량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쿠팡 등 오픈마켓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국내 오픈마켓은 직접적인 상품 판매의 당사자가 아닌 통신판매업자(플랫폼)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지식재산권 침해, 상표권 침해 문제는 물론 소비자 피해를 예상하고도 한발 물러나 뒷짐만 지고 있어 비판을 받았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정거래위원회도 플랫폼에 칼을 빼들었습니다. 공정위는 지난달 발란, 트렌비, 머스트잇, 오케이몰 명품 플랫폼 4개사에 △환불불가 △재판매 금지 제재 △플랫폼 책임 부당 면제 등 불공정 약관 시정 명령을 내렸고, 이에 플랫폼사들은 가품 판매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불공정 약관을 수정했습니다.
공정위는 플랫폼상 상품의 진위여부, 제품하자, 가품 여부 등에 대해서는 플랫폼의 책임이 분명히 있음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 조항'은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을 소비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가품 피해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이를 유통 또는 판매하는 플랫폼사 역시 소비자 보호와 브랜드 상표권 침해 등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유라 기자 cyoora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