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조병구)는 19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두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공소장에 이렇게 상세하게 전제 사실을 기재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공소 요건에 대해 판단이 전제 사실을 간략히 하기를 지휘하고 명령한다"고 했습니다. 그간 김 전 부원장 측이 검찰의 공소장을 두고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해왔는데,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죠.
'공소장일본(一本)주의'란?
형사소송규칙 118조 2항은 "공소장에는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 공소사실과 관련 없는 사실을 적어서는 안 되고, 공소장은 하나만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재판 시작 전부터 법관에게 피고인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줘 유죄로 치우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섭니다. 재판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1982년 형사소송규칙이 제정될 때부터 확립된 원칙입니다.
2019년 12월 '김용의 북콘서트'에서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김용 전 민주연구원부원장 블로그)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 '공소장일본주의 위반→'공소기각'
검찰이 공소장일본주의를 위반한 경우 재판부는 공소기각으로 재판을 끝낼 수 있습니다. 공소기각은 소송 요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보고 재판을 진행하지 않은 채 소송을 종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로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이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도 기소됐지만 재판부가 공소장일본주의에 위배된다며 2018년 공소기각으로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소 이례적인 판단으로, 전문가들은 <뉴스토마토>에 재판부가 검찰에 공소장변경을 요청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기각할 수도 있지만,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대체로 공소장변경을 요청하는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재경지법의 또 다른 판사도 "공소장이 위배됐다고 해서 바로 기각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과,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로 실형을 확정받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각각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을 이유로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습니다. 김 전 부원장 사건을 맡은 재판부도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죠.
김용 공소장'인데…대부분 '이재명과 유착관계' 서술
이번 김용 사건에서 재판부가 공소장 변경을 요청한 것은 '법관에게 예단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만은 아닙니다. 재판부는 검찰이 기재한 공소 내용이 이미 다른 재판부에서 심리 중인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사진=뉴시스)
실제 <뉴스토마토>가 입수한 김용 공소장을 살펴보면 전체 공소사실 17쪽 중 범죄 '전제사실' 부분은 11.5쪽으로 전체 공소장의 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반면 김 전 부원장의 혐의인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하는 부분은 2.5쪽에 불과했습니다.
해당 공소장의 '전제사실' 부분은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개발사업과 위례 신도시 개발에 치중했고, 이에 따라 피고인들과 민간 사업자들과 유착이 이뤄졌다는 내용 등이 상세히 적혀있습니다. 이른바 '대장동 특혜'와 '위례 신도시 특혜' 혐의에 대해 설명한 셈이죠.
이들 사건은 각각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이준철)와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가 맡고 있습니다. 김 전 부원장의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대장동 사건이나 위례 신도시 사건의 경우 다른 재판부에서 여러 공방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런 전제사실을 우리 법정에서 다투는 건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우리 재판부에서는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 뇌물과 직무 관련성 등 금원이 오간 부분만 핵심으로 심리할 것"이라며 검찰을 향해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검찰, '이재명' 겨눠…수사망 좁힌다
앞서 검찰은 12일 대장동 특혜 사건에서 김만배씨 등을 추가로 기소하며 공소장을 통해 이 대표를 사실상 대장동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했습니다. 해당 공소장에서 이 대표는 146번 언급됩니다. 특정 민간업자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구조를 설정하는 데 있어 지시하고 승인했다는 표현도 10번 이상 나옵니다. 검찰이 이 대표와 대장동 사건 연관성을 공소장에 적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대표를 향한 수사를 좁혀가는 모양새입니다. 검찰은 오는 28일 오전 이 대표에게 배임과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소환 조사할 예정입니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