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1월 25일(수) 토마토Pick에서는 말 많고 탈 많은 집행유예를 다뤄보겠습니다. 최근 마약 사건 재범이어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돈스파이크’ 사건으로 집행유예가 다시 비판받고 있습니다. 일단 검찰은 항소한 상태입니다.☞관련기사 집행유예는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감방살이를 모면하는 수단으로 활용된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법조계 내부에서도 집행유예 제도를 이대로 두면 안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입니다. 집행유예제도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요?
집행유예 개념
집행유예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감옥살이 대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제도입니다. 징역형을 선고하되 일정 기간 그 집행을 미뤄(유예)두는 건데요. 유예 기간은 1년 이상 5년 이하로 제한됩니다. 피고인이 그 기간 동안 죄를 짓지 않으면 형 선고의 효력이 상실됩니다. 선고의 효력이 상실된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관대한 제도입니다.
집행유예가 필요한 이유
정말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집행유예는 나름대로 필요성이 있기도 합니다. 지난 19일 법원은 1급 중증 뇌병변에 지적장애를 앓고 있던 딸을 38년간 대소변을 받아내며 극진히 돌보았지만, 그 딸이 대장암 3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심신이 무너져 딸을 살해한 64세 어머니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은 살인죄가 정한 형량 때문에 12년을 구형했지만 내키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구요. 집행유예 제도가 없었다면 이 어머니는 꼼짝없이 실형을 선고받고 징역을 살아야 했을 겁니다.☞관련기사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조건
형법 제 62조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의 형을 선고할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판사가 '양형 조건'을 참작해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다만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형 집행이 끝난 뒤(형 면제 포함) 3년 안에 다시 지은 죄'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습니다. 집행유예기간 중에 다시 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제외됩니다. 법관이 참작할 수 있는 양형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어머니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반성, 사과, 피해배상 등)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집유 기간 중 범죄를 저지르면?
돈스파이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심에서 선고된 형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입니다. 검찰이 항소를 해서 2심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이번 1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그날로부터 5년 안에 돈스파이크가 다시 범죄를 저질러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확정되면 이번에 형 집행이 유예됐던 징역 3년이 더해져 총 6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집행유예가 비판 받는 이유
앞서 뇌병변 딸을 살해한 어머니의 경우는 아주 드문 사례입니다. 대부분의 범죄는 처벌받아 마땅한 경우입니다. 집행유예가 비판받는 이유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사실상 형벌로 효과가 없다 : 그렇습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범죄자가 그 기간만 잘 참으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살아갑니다. 그러니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는 건 아무런 벌을 받지 않는거나 다름 없습니다. 아무리 중죄를 지어도 부자들에게는 정찰제라고 하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면 콧방귀 뀔 수준에 불과합니다. 특히 죄 의식 없는 사람에게 집행유예는 사실상 무죄 선고나 다름없습니다. 감옥살이 안해도 되니까요.
-집행유예 중에 다시 집행유예 가능 : 그냥 집행유예도 많은 국민들 열받게 하는데, 집행유예 중에 저지른 범죄로 다시 집행유예를 받을 수도 있는 부분은 화딱지가 나는 거죠. 형법 제62조 제1항 단서 때문인데요. 이 조항은 재범자가 다시 집행유예 선고받지 못하도록 제한한 규정인데 구멍이 있습니다. 집행유예 선고받고 3년 안에만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습니다.
-막대한 벌금형이 차라리 낫다 : 범죄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나 재벌 등 부유층에게 집행유예가 형벌 효과가 전혀 없는 상황인데요. 그래서 거액의 벌금형이 차라리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자조적인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나마 부유층에게는 거액의 벌금도 형벌로서는 효과가 없습니다. 하긴 조직폭력배 같은 죄 의식 희박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징역도 살지 않는 집행유예보다는 차라리 거액의 벌금형이 그나마 낫다는 것이지요.
사법불신 심화시키는 집행유예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법불신의 상징입니다. 이 중심에 집행유예제도가 있습니다. 부유층과 권력층이 특권층으로 군림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재벌 총수와 그 일가들의 범죄를 보면, 검찰은 ‘불구속 수사’, 법원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대통령은 ‘사면’ 순으로 특혜가 남발됐습니다.
☞관련기사 법원 판결과 관련해서는 '재벌총수 3·5법칙'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양형이유를 보면 "기업 경영을 통해 국가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대목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적시돼 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보기 좋게 풀어놓은 말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여성과 아동 성폭력 사건 및 음란물 사건에 집행유예가 남발되면서 법원을 향해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춘천지법은 12세 초등학생을 성폭행하고 피해자 집까지 무단침입한 50대 남성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지난 20일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에는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도록 하는 법률안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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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반성’은 판사님께만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을 불식하겠다고 대법원이 설치한 것이 바로 양형위원회입니다. ‘국민 법감정’에 맞는 양형기준을 세워 법관들에게 권고한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관련기사 그러나 집행유예 제도에 대한 비판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결국 양형조건을 참작하는 게 전적으로 법관의 재량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진지한 반성’에 대한 판단입니다. 지난 2016~2019년 선고된 성범죄 사건 중 집행유예가 나온 사례의 63.8%가 ‘진지한 반성’을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반성문 한 장 잘 쓰면 집행유예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돈스파이크도 반성문을 썼습니다. 그러나 범죄자가 해야 할 것은 판사님께 반성문을 쓰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진지한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최근 논란이 사례를 보면 집행유예 제도가 왜 비판을 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약 재범에다가 불법구입·투약·유통 혐의로 기소됐는데도 집행유예 선고받은 돈스파이크☞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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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법원·검찰·국회의 의지
서강원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지난해 말 <우리나라 집행유예 제도의 문제점과 그 개선방안>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우리 형법상 집행유예 규율 규정은 5개 조항인데 반해 1심 형사공판사건 중 약 3분의 1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파급력이 지대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넓은 재량과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고 지적했습니다. 서 검사는 이와 함께
▲형법 제62조 개정
▲피해배상명령의 법원 직권화
▲단순 집행유예 선고 지양
▲일부집행유예제 도입
▲미국식 보호관찰제 도입 등을 제안했습니다.
☞관련기사 법의 개정과 인력·예산의 확보 등 난제가 산적했지만 서 검사의 논문은 현직 검사의 의미 있는 제안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법조계에서도 징역형의 일부에 대해서만 집행유예를 적용하도록 하자는 제안(부분 집행유예제도) 등에 대해서는 수긍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결국 문제는 법원·검찰과 국회의 의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