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여기는 백사마을이라고 서울시 4대 달동네라 그래요. 여긴 재개발 고시가 돼서 집 수리를 못해요. 그러니 한겨울에도 집에 바람이 술술 들어오는데도 주민들은 어찌 못하는 기후 약자들만 살고 계세요."
27일 오전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에서 만난 이병열 노원구자원봉사센터 캠프장은 백사마을에 살고 있는 100여가구를 '기후 약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도 연탄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백사마을 인근 자원봉사센터에서 만난 엄용해 자원봉사자 또한 백사마을 주민이기도 한데, 치솟은 기름값으로 인해 연탄이 더욱 절실해진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는 “연탄을 하루에 보통 6~7장, 많이 때는 집은 10장까지도 때는데 최근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주민들은 이것도 모자란다고 한다"며 "백사마을이 재개발 된다는 소식 때문에 다 철거된 줄 알고 연탄 지원도 많이 끊겼다"고 호소했습니다.
백사마을의 한 가구 지붕에 고드름이 얼어있다. (사진=정동진 기자)
잠깐 돌아본 백사마을의 겨울은 어떤 계절보다도 추웠습니다. 수십년된 판자촌은 이주하고 난 뒤 텅 비어있는 집이 많았고, 이를 표시라도 하듯 유리창이 마구 깨진 곳이 수두룩했습니다. 전혀 환경정비가 되지 않은 곳에서 아직도 이주하지 않고 살고 있는 집들도 몇 집 건너 한 집씩 보였습니다. 그늘진 환경 때문인지 눈이 그대로 쌓여있거나 지붕마다 고드름이 길게 늘어서 있기도 했습니다.
27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서울연탄은행에 백사마을 주민들에게 나눌 연탄이 쌓여 있다. (사진=정동진 기자)
"연탄 200장이면 한 달 버텨…연탄은행이 우리 등불"
이 같은 백사마을의 겨울나기를 위해 자원봉사자들도 나섰습니다. 이날 오전 서울연탄은행은 40여명의 이화여대 대학생들과 연탄 2000장 나르기에 나섰습니다.
한 장에 3키로가 넘는 연탄을 4장씩 나무지게에 얹으면 어깨에 실리는 무게가 족히 15kg는 됩니다. 영하 10도 이하의 추운 날씨였지만 봉사자들은 이날 10가구에 200장씩 연탄을 나르기로 했습니다.
200장이면 약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양입니다. 연탄은행 직원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정확한 한 집에 들어가는 연탄 개수를 정확하게 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차가 날 경우 연탄을 적게 받는 집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4명씩 조를 짠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나르고 있는 한 집에서 주민을 만났습니다. 예순의 정 모 씨는 아침저녁으로 연탄을 6장씩 땐다고 했습니다. 하루에 12장의 연탄이 필요한 거죠. 적어도 5월까지는 연탄이 필요하니, 1년에 연탄을 때지 않는 날보다 떼야 하는 날이 더 많다고 합니다.
"난방료 두 배…연탄도 비싸"
정 씨는 "보일러가 있지만 기름값이 워낙 비싸서 연탄을 사용해야 한다"며 "연탄도 한장에 1000원씩 하기 때문에 너무 비싸서 벽에 보온재를 붙이면서 버텼는데, 이렇게 연탄을 지원해주는 연탄은행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등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 씨처럼 집에 연탄을 땔 수 있는 곳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집이라고 합니다. 연탄 때는 장치가 하나 60만원인데 이건 사비로 사야 하니까요. 그래서 보일러도, 연탄도 못 떼는 집은 집 안에 난로를 넣어 놓고 버틴다고 합니다. 정 씨는 그런 이웃들의 집에 가서 수도를 녹여주기도 하는 등 자신이 받은 봉사를 다시 돌려주는 활동도 한다고 합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는 백사마을. 백사마을은 현재 재개발로 주민 이주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주하지 않고 아직 머무르고 있는 집이 110가구 정도 됩니다. 이 중 70~80가구는 연탄을 땐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치솟는 물가에 '난방비 폭탄' 소식까지 더해지며 연일 서민들이 팍팍해지고 있는 가운데 연탄값까지 만만찮게 들어가는 상황에서 백사마을 주민들은 길고 긴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서울연탄은행에 자원봉사를 하러 온 이화여대 학생들이 27일 백사마을에서 연탄을 나르고 있다. (사진=정동진 기자)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