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재훈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17일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 2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수혈받기로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빌려온 자금의 대부분을 반도체 투자에 사용한다고 밝혔는데요. 삼성전자가 자회사로부터 대규모 운영자금을 차입한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사상 처음 있는 일이죠. 업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가 M&A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지만 사측은 이같은 내용에 대해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공개된 사실만 놓고 보자면 최대 수혜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차입으로 약 2년 간 2조원에 근접한 수익을 낼 수 있게 됐으니까요.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날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빌린다고 공시했습니다. 자금 차입 기간은 2025년 8월16일까지며 이자율은 연 4.6%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찾아 QD-OLED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그간 삼성전자는 외부 차입 없이도 조 단위 투자를 진행해왔습니다. 삼성전자는 국내 상장사 중 '실탄'이 가장 많은 회사인데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현금·현금성 자산 및 단기금융상품은 128조원(연결 기준)에 이릅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가 지분 85%를 가진 자회사입니다. 따라서 20조원 이상은 삼성디스플레이의 자산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130조원에 육박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돈을 빌리는 삼성전자의 결정에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오는데요. 삼성전자 관계자는 "보유금의 상당액이 미국 등에 있는 해외법인에 있고 단기금융상품이나 배당금 등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이를 마련하는 비용도 감안해야 했다"며 "현실적으로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차입금 대부분이 반도체 투자에 사용될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전자의 시설투자 금액은 53조1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90%인 47조9000억원이 반도체에 투입됐습니다. 20조원이면 반년치 투자금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사는 삼성전자의 투자처 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이자 수익에 더 쏠린 모양새입니다. 단순 계산해봐도 연간 이자 수익만 9200만원에 달합니다. 만기까지 2년 반 동안의 기간이니 2조원에 달하는 돈이 삼성디스플레이에 꽂히는 셈입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작년 4분기 1조82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는데요. 분기 영업익 보다 큰 금액을 고스란히 영업 외 수익으로 올릴 수 있는 것이죠. 삼성전자는 업황이 좋아지면 만기 이전에 갚을 수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디스플레이 업황이 악화되고 있는데다 메모리 반도체까지 올 상반기 시황이 안좋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차입은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반도체 업황 악화로 20조원을 밑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올 1분기 적자를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조재훈 기자 cjh125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