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당신과 함께 운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아(000270)가 최근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고성능 스포츠 세단 '스팅어' 헌정 영상을 올리며 단종을 예고했습니다. 지난해 단종설이 불거졌던 스팅어에 대해 기아가 공식적으로 작별을 고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앞으로 스팅어의 빈자리는 고성능 전기차 EV6 GT가 대신합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최근 공식 유튜브 채널에 'A Tribute to Stinger(스팅어에 바치는 헌사)' 제목의 2분35초짜리 영상을 게시했습니다.
영상에는 스팅어와 EV6 GT가 대화를 나누며 서킷에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It's an honor to drive with you(당신과 함께 운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EV6 GT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연출되며 끝이 납니다.
기아 스팅어 헌정 영상 캡처.(사진=기아 유튜브 채널)
전기차 EV6 GT에 고성능 자리 내줘
기아는 오는 4월 광명공장에서의 스팅어 생산을 종료할 예정입니다. 2017년 5월 출시 이후 6년 만인데요. 스팅어 단종 배경은 수요 부족과 기아의 전동화 전략이 맞물려 있습니다. 우선 스팅어는 지난해 1984대가 팔리며 기아 판매 차종 중 가장 저조했습니다. 누적 판매량도 2만5000대 수준에 그칩니다.
업계 관계자는 "4월까지 월간 1000대 가량 생산이 예정돼 있고 그 이후엔 생산 계획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기아는 2025년까지 11종의 전기차 라인업을 갖출 계획입니다. 이에 따라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하고 디젤차량과 수요가 적은 모델을 우선적으로 정리하고 있죠. 대표적으로 스토닉, 쏘울 등이 단종됐습니다. 업계에선 준중형 세단 K3도 곧 단종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스팅어가 담당했던 기아의 고성능차 역할은 EV6 GT가 이어갑니다. 지난해 9월 출시된 EV6 GT는 430kW(585마력)의 최고출력과 740Nm(75.5kgf·m)의 최대토크를 갖췄습니다. 정지 상태에서 단 3.5초 만에 시속 100km까지 도달하고 최고시속 260km로 '가장 빠른' 국산차 타이틀을 갖고 있죠. 기아는 EV6 GT를 시작으로 향후 출시 예정인 전기차에 고성능 버전인 GT 모델을 브랜드화해 지속 운영할 방침입니다.
다만 기아 관계자는 "스팅어 단종과 관련해 아직 확정된 건 없다"고 밝혔습니다.
기아뿐만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고성능 전기차를 앞 다퉈 내놓으면서 내연기관 스포츠카들이 잇따라 단종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빨라지는 내연기관 종말 시계, 전기차 전환 속도
현대차(005380)는 고성능 브랜드 N의 전동화를 빠르게 추진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벨로스터를 단종시킨 이후 올해 하반기 첫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현대차는 내연기관 시대부터 이어온 운전의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N차량의 3대 핵심요소(코너링, 스포츠카, 주행능력)를 전기차 시대에도 반영한다는 방침입니다.
기아 EV6 GT.(사진=기아)
아우디는 2019년 2인승 스포츠카 'TT'를 단종시킨 이후 RS e-트론 GT를 출시하는 등 고성능 브랜드인 RS의 전동화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지난해 말 고성능 브랜드 AMG의 첫 순수 전기차 '더 뉴 메르세데스-AMG EQS 53 4MATIC+'을 출시했는데요. 이번 모델 출시는 벤츠가 본격 고성능 전기차 경쟁에 나섰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슈퍼카 브랜드들도 기존의 내연기관 정체성 대신 전동화 흐름을 받아들이며 친환경차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습니다. 람보르기니는 내연기관 12기통(V12) 엔진 슈퍼카 양산을 중단하고 올해 첫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모델을 출시합니다. 2024년까지 전 라인업을 PHEV로 생산할 예정입니다.
람보르기니는 하이브리드로 전환을 위해 4년간 총 15억 유로(약 2조300억원)의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는데요. 람보르기니 역사상 최대 투자 규모입니다. 람보르기니는 하이브리드 전환 이후 2028년 브랜드 최초 순수 전기차를 출시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페라리 역시 2025년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인데요. 현재 페라리는 라인업에 PHEV 모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슈퍼카 업체들은 브랜드 정체성 때문에 전동화를 꺼려왔습니다. 또 배터리 기술이 아직 슈퍼카의 요구를 만족시킬 정도로 올라오지 않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잇달아 내연기관 생산 중단을 선언하고 전기차를 내놓으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슈퍼카는 환경기준이 높은 유럽이 주요 시장인 만큼 내연기관 엔진만 고집하면 판매 자체가 불가능진다는 위기의식이 전동화 전환 요인으로 분석됩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엔진 특성을 가지고 브랜드 이미지가 극대화된 슈퍼카 업체들이 이제는 친환경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판매 자체가 심각할 정도로 환경 규제가 강화됐다"며 "전기차까지는 아니어도 하이브리드차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만큼 고급 프리미엄 브랜드 위치도 이제는 바뀌어야 된다"고 말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