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지난해 국내 주요 상장사 중 법인세 1위는 현대차로 나타났습니다. 정부가 기업 실적 부진 탓에 세수 감소를 우려하는 가운데 현대차가 눈에 띄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올 1분기에도 만년 법인세 1등이었던 삼성전자를 비롯해 납세 실적이 높았던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사업 적자를 조단위로 겪을 전망입니다. 자연히 실적이 좋은 현대차에 대한 세수 의존도는 더 커질 듯 보입니다.
11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및 각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상장사 중 연결기준 법인세차감전사업이익 상위 20사 중에서 법인세 1등은 현대차로 집계됩니다. 현대차 법인세비용(이연법인세 조정 후 법인세)은 작년 2조964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2조2664억원에 비해서 31% 증가한 수치입니다.
납세 실적도 좋은 현대차
작년 연결실적을 제출한 전체 상장사 604개의 법인세 총액은 12조9764억원입니다. 전년 34조7696억원보다 62%나 감소해 정부의 세수감소 걱정이 기우는 아닙니다. 법인세 총액 중 현대차는 17%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604개 상장사 개별 법인세 평균은 215억원입니다. 현대차 법인세는 평균치보다 2조2449억원이나 높습니다.
본래 법인세 1등은 늘 삼성전자가 차지했습니다. 2위와도 현격한 차이가 나 순위가 바뀔 확률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작년 법인세비용이 -9조2136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마이너스 법인세비용은 환급액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세전이익 상위 20사 중 법인세비용이 마이너스인 경우는 삼성전자가 유일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작년에 인식한 당기법인세는 6조8894억원으로 전년 10조9402억원보다 줄긴했지만 여전히 다른기업들보다 월등했습니다. 다만 삼성전자는 세액공제나 종속기업 등 투자기업에 대한 손익이 반영된 이연법인세효과로 법인세비용이 마이너스 전환했습니다. 2021년만 해도 삼성전자 법인세비용은 13조4443억원이나 됐으나 작년에 일시적차이로 인한 이연법인세자산 15조원 정도를 과세소득에서 차감한 것이 확인됩니다.
일시적차이로 인한 이연법인세자산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합니다. 종속기업투자지분에 대한 손상 또는 투자주식 장부금액이 세무상 취득원가 이하로 내려가거나 지배기업과 종속기업이 국내외 따로 위치할 경우 환율 변동에 의해서도 발생합니다. 기업은 회계상 법인세비용을 산정할 때 이러한 일시적차이에 따른 이연법인세자산을 인식해 법인세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그간 누적된 이연법인세자산 중 일부를 작년에 인식해 법인세비용을 줄였습니다. 이연법인세자산을 인식하려면 그만큼 과세소득이 발생해야 하는데 올해 적자가 클 것으로 보고 자산이 소멸되기 전에 인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때문에 만년 법인세 1위 삼성전자가 현대차에게 자리를 내줬습니다. 현대차그룹은 기아도 작년 법인세 2조930억원을 기록해 3위에 오른 것이 눈길을 끕니다. 기아 역시 세전이익이 커져 법인세도 28% 증가율을 나타냈습니다.
상위기업 실적부진에 세수도 휘청
2위는 2조1383억원을 기록한 GS가 차지했습니다. 세전이익이 2021년 2조8529억원에서 2022년 4조6210억원으로 62%나 올라 법인세도 73%나 증가했습니다. GS는 작년 상반기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원유 재고 관련 이익과 정제마진이 개선된 효과가 컸습니다. 하지만 작년 4분기엔 GS 영업이익이 전분기 대비 35% 감소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작년 상반기 기저효과로 1분기 세전이익도 전년동기대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2021년 SK하이닉스가 법인세 3조7998억원으로 삼성전자에 이은 압도적 2위였지만 작년에는 1조7611억원을 기록해 순위도 5위까지 하락했습니다. 작년 4분기 1조8984억원 영업적자 전환하는 등 반도체 사업 실적 부진이 법인세 감소로 이어지는 양상입니다.
지난달 17일 한일 비즈니스라인드테이블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이 모인 모습. 사진=연합뉴스
법인세 4위는 SK로 작년 1조9425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세전이익 상위 20사 중 법인세 상승률이 603%로 가장 높았습니다. SK는 세전이익이 작년 5조9086억원으로 전년과 비슷했지만 이연법인세효과를 봤던 것이 작년에 줄어들어 법인세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세전이익 상위 20위사 중 현대차, GS, 기아, SK, SK하이닉스 등 5개사만 법인세가 조단위입니다. 여타 기업들과 법인세 격차가 커 소수 기업에 대한 정부의 세수 의존도가 높은 점이 부각됩니다. 이는 소수 상위권 기업이 부진할 경우 세수 타격도 클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실제 최근 재정당국은 올해 심각한 세수 감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요즘 현대차 말고는 기댈 곳이 없을 정도로 산업경기가 얼어붙고 있음을 체감한다”라며 “그룹 회장들이 전기차 관련 신사업을 강조하는 데는 심각한 위기감이 담겨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