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로 확장억제 강화를 위한 '핵협의그룹'(NCG) 구성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내세웠습니다. 다만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 분야 성과에 집중하다 보니 경제적 손실과 더불어 중러 반발에 대한 외교 리스크도 함께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무엇보다 방미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 불법 도청 의혹에도 별다른 항의 없이 저자세 외교로 나선 것에 비해 기대감에 못 미친 성적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역대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비교해도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북 '당사자원칙' 천명한 YS…'햇볕정책' 미 지지 끌어낸 DJ
1일 정치권에 따르면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 선출된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최근까지 역대 대통령들의 한미 정상회담 주요 성과를 짚어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1년 7월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전 대통령과 가진 회담에서 주한미군 감축과 연합사 해체 포기를 이끌어 냈습니다. 냉전종식 이후의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에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방위조약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확인한 것이 당시 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힙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995년 7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북한 개혁·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대북 공동전략고위협의체제'를 구축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수립은 '당사자 해결원칙'에 따라 남북 간에 협의돼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못 박은 겁니다. 당시 이 문제가 합의되기까지 이전 회담 때부터 날카로운 대립각을 보였지만 김 전 대통령은 북한 문제의 최종결정은 한국 정부가 내려야 한다고 거듭 관철시키려 했습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98년 6월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대북제재 단계적 완화 등의 합의를 이끌어내며 '햇볕정책'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얻은 것이 성과로 꼽힙니다. 당시 김 전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 촉진을 위한 미국 정부 차원의 각종 지원 조처 등도 얻어냈습니다.
1993년 2월2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노태우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무현, 국익 앞세운 실용주의…부시조차 "강한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국과의 균형적인 동맹관계 발전을 꾀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5월 조시 워커 부시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양국은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한미 관계를 미래지향적이며 포괄적인 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을 확인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국내 파병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회담 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것이 동맹관계를 회복하고 정상회담의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두 정상은 북한 문제로 때로는 손을 잡기도 하고, 때로는 등을 돌리는 등 임기 내내 원만한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부시 전 대통령은 2019년 5월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 초상화를 들고 참석했습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서라면 미국을 향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했던 강한 대통령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2008년 4월 부시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군 감축 백지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지속 등의 성과를 올렸고, 이후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10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회담에선 한미 FTA 이행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5월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맹'에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격상하자는 내용의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5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 폐지를 얻어냈습니다. 또 미국으로부터 55만명의 한국군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도 공급받았습니다.
2003년 5월11일 취임 후 첫 미국 방문 차 뉴욕 존F. 케네디공항에 도착한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 모습. (사진=노무현재단 제공)
불법도청 눈감은 윤 대통령…미국이 준 선물보따리 없었다
역대 한미 회담에서 전직 대통령들은 미국 대통령과 '밀고 당기기'를 통해 성과를 극대화하려고 했던 반면 윤 대통령은 방미 전부터 저자세 외교로 회담 협상의 주도권을 미국에 다 빼앗겼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NCG 명문화로 확장억제의 제도적 긴밀성을 높였지만 미국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에 대한 독점적이고 최종적인 권한을 갖는다는 점에서 핵무기 사용 권한에 우리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될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은 여전히 추가 협의가 필요한 상황으로, 결국 미국으로부터 한국의 전기차, 반도체 업체를 보호할 구체적 조처를 확실하게 얻어내지 못한 겁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본지와 한 통화에서 "결과적으로 (미국으로부터) 받은 게 없다"며 "경제 문제로 IRA를 해결 못 했고, 확장억제에 '올인'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핵공유도 얻어내지 못했다. 저자세 외교로 나선 것이 그대로 결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