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무역수지 등 우리나라 주요 산업 경기 지표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산업계 버팀목인 반도체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전반적인 수출 실적을 끌어내렸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갈등 등 대외 변수가 주요 원인이지만, 정부의 발 빠르지 못한 대응 또한 아쉽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개한 ‘4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496억2000만달러로 전년보다 14.2% 감소했습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취임한 지난 5월 이후 6월 수출은 24억7000만달러, 7월 50억3000만달러, 8월 94억3000만달러, 10월 67억2000만달러, 11월 70억 4000만달러, 12월 46억9000만달러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1월 수출은 126억9000만달러로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후에도 2월 52억7000만달러, 3월 46억2000만달러 적자를 냈습니다. 무역수지는 수출과 수입액의 차이를 말하는 지표입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관세청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지난해 3월 이후 1년 넘게 적자 행진 중입니다. 표는 우리나라 월별 무역수지 추이. (그래픽=뉴스토마토)
무역수지 1년 최악 적자…제조업 경기 더딘 회복세
이처럼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각종 수출 지표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 중입니다.
올해 1분기 누적 무역수지는 224억100만달러 적자로, 전년 동기 45억200만달러 적자와 비교하면 5배 가까이 많은 수준입니다. 지난달 무역수지는 26억2000만달러 적자로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반도체 산업 회복 기미가 없습니다.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8월부터 계속해서 전년 대비 뒷걸음질 중인 상황입니다.
100억달러를 웃돌았던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 10월 92억2700만달러를 기록하며 100억달러 이하로 줄어든 뒤 감소폭이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올해 들어서는 감소폭이 더욱 커지면서 1월 60억100만달러(-44.5%), 2월 59억6700만달러(-42.5), 3월 85억9800만달러(-34.5%)에 그쳤습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20% 안팎에서 10% 초중반대까지 내려온 상황입니다.
지난달 무역수지는 26억2000만달러 적자로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픽은 월별 수지(억달러). (출처=산업통상자원부)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부진의 장기화로 수출액이 7개월 연속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을 보면 1년 전보다 41% 감소했습니다. 반도체뿐 아니라 제조업 경기는 전반적으로 더딘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디스플레이(-29.3%), 석유제품(-27.3%), 석유화학(-23.8%), 철강(-10.7%) 등의 주력 품목들도 부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3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달 전 산업 생산은 전월보다 1.6% 증가했습니다. 증가 폭도 2월(0.7%)보다 확대되며 지난해 3월(1.9%) 이후 1년 만에 최대치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1분기(1~3월) 전체로 보면 전년 대비 9.1% 감소해 회복 추세라고 보긴 어렵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산업연구원 '산업경기 전문가 서베이 지수(PSI)' 결과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4월 업황 현황 PSI는 95에 그치며 기준점인 100을 하회했습니다.
PSI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국내 주요 업종별 경기 판단·전망을 설문 조사, 정량화한 결과입니다. 100을 기준으로 200에 가까울수록 전월 대비 개선된다는 의견이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5월 업황 전망 PSI 또한 101로 100을 소폭 상회하는 데 그쳤습니다. 전월과 달리 상승 전환했지만 매달 등락이 거듭되는 혼조세여서 회복세가 더디다는 분석입니다.
산업부 측은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의 가격 하락 지속, 유가 하락에 따른 석유제품·석유화학 단가 하락, 철강 가격 하락이 지난달 수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출산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반도체 등의 기술개발 투자,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조성, 투자세액공제 확대 등의 정책적 지원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설명했습니다.
1일 통계청 '2023년 3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 산업 생산은 전월보다 1.6% 증가했습니다. 사진은 부산항. (사진=뉴시스)
IRA·반도체법 등 대외 변수 지속…불확실성만 가중
이처럼 산업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갈등, 탄소배출 규제 강화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도 커지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북미에서 조립하지 않은 전기차에 세액공제 차별을 두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경우 우리 정부가 빠르게 파악하지 못해 늑장 대응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이어진 바 있습니다.
미국에서 투자 인센티브를 받은 기업에 대해 중국 생산을 제한한 '반도체지원법' 또한 우리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미국 국빈방문을 통한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두 법안에 대한 협의에 나서기로 했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손에 쥐진 못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양 정상은 청정에너지 경제를 구축하고, 양국의 핵심 기술을 위한 상호 호혜적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강화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함을 확인했다"고 밝혀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는 지적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논평을 통해 "미국의 IRA와 반도체법에 관한 한국 기업의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IRA와 반도체법 관련 명문화된 추가 조치를 도출하지 못한 것은 다소 아쉽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지가 많지는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우리 기업에 대해 미국이 동등한 수준, 혹은 이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전략적 모호성이 중요한 시기"라며 "미국과 동맹국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중국 외 다른 대체 시장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세종=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