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과의 대화 관련 언론보도 등 현안에 대해 해명하기 전 물을 마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발칵 뒤집힌 여권…' 대통령실이 국민의힘 회의에서 나오는 발언들을 검열하고 내년 총선 공천까지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습니다. 발언 당사자인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곧바로 해명에 나섰지만, 의혹만 키웠습니다.
이 수석은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자신이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에게 '공천 문제를 거론하며 한일 관계에 대한 옹호 발언을 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했다'는 MBC의 녹취록 보도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전혀 나눈 적이 없어 놀랐다. 금기 사안에 관여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며 "공천은 당에서 하는 것이지 저희(대통령실)가 하지 않는다. 공천을 주는 입장에 있지도 않다"고 전면 부인했습니다.
"공천 개입 아냐" 이진복 해명에도…의혹 '일파만파'
이 수석은 태 의원과 전화 통화를 한 게 아니고 전당대회 후 최고위원 당선 축하차 만났다면서 "선거(전대) 관련 대화를 주로 나눴다. 제주 4·3 발언 관련해 전대에서 논란이 됐는데 아쉬움이 남는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고 특별히 이슈될 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태 의원이 자신에게 두 차례 전화해 논란을 빚은 데 대해 사과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수석은 "태 의원이 자신 직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과장되게 표현한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하더라"며 "내부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제가 어떻게 하겠느냐.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공천계획이나 당무개입 논란은 개개인의 사과로 마무리될 성격은 아니라는 지적에 "의원 본인이 이야기한 것을 제가 조치할 수 없다"며 "그것은 당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했습니다.
김기현(오른쪽)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왼쪽은 태영호 최고위원. (사진=연합뉴스)
이번 의혹은 이 수석이 태 의원에게 공천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한일 관계 옹호 발언을 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했다는 게 핵심입니다. 마치 대통령실이 내년 공천 문제를 미리 관할하며 여당을 주무르고 있다는 의혹을 살만한 정황입니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매일 국회에서 열리는 여당의 아침 회의의 모두발언 내용을 검열하고 있다는 의혹을 살 수도 있습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본지와 한 통화에서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의혹이 또 사실로 드러난 사례가 아니겠느냐. 태 의원이 과장되게 한 말이라고 넘어가려고 하는 거 같다"며 "향후 이 수석의 경질과 당 차원에서 태 의원의 징계가 있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심 100%룰·어대현 전대…대통령실 당무개입 '민낯'
이미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지난 전대 당시부터 당무 개입 논란을 낳은 바 있습니다. '윤심'(윤 대통령 의중)이 김기현 현 대표에게 있다고 알려진 뒤 공교롭게도 그의 '탄탄대로'를 위한 작업들이 이어졌다는 게 상당수 정치권 분석입니다.
황정근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윤리위 첫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며 잇단 설화로 논란을 빚은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이 주도해 18년 만에 전당대회 룰을 당원투표 100%로 개정하며 유력 비윤(비윤석열)계 후보였던 유승민 전 의원을 배제시켰고, 각종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나경원 전 의원이 대통령실과 윤핵관 등의 전방위적인 압박 끝에 전당대회에 불출마했습니다. 이후 김 대표의 경쟁자 안철수 의원을 향한 대통령실의 공개 저격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국민의힘이 사실상 용산 대통령실의 하청업체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당무 개입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혹의 눈초리는 커지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실이 국민의힘 총선 공천에 분명한 개입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태 의원이 쏟아냈던 야당을 향한 무리한 비난과 노골적인 정권 옹호는 대통령실의 공천 압박에서 기인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권에서도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만약 그 녹취록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수석은 당무개입, 공천권 개입이라는 중대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며 "즉각 경질하고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유 전 의원도 전날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 1인의 사당으로 전락할 때부터 불법 공천개입 가능성에 대해 누누이 경고해 왔다"면서 "이번 사건이 불법 공천개입인지 검찰과 경찰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의무가 있다"고 요구했습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