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미국과 중국은 ‘냉전’ 중인가

입력 : 2023-05-12 오전 6:00:00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미중 신냉전이 격화하면서 한국 대외전략의 선택지가 시험에 올랐다. 지난 5년 사이 본격화된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은 마치 과거 소련에 했던 것처럼 중국이 미국 앞에 완전히 굴복하고 쓰러질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정부 외교안보정책을 이끌고 있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2021년에 쓴 ‘미-중 신냉전 시대 한국의 국가전략’ 논문에서 이 같은 진단과 함께 “이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당히 잘 지내면서 모호한 외교를 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연대를 통해 세계 안보와 경제 질서의 주류 세력을 재편하려 할 것이다. 한국이 직면한 국가생존의 문제는 당장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이나 이웃 나라와의 무력분쟁보다도 미래의 권력과 부를 누가 결정할 것인지의 문제와 직결된다. 또한 한국이 미래의 중추 세력과 어떠한 관계를 맺을 것인가의 과제로 연결된다.”
 
미래의 권력과 부를 오롯이 미국 결정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2021년 김태효 “전략적 모호성 외교 불가능…북한의 통일전선전술, 한국정치에 깊숙이 개입”
 
그는 이 논문에서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 전술이 한국정치에 깊숙이 개입돼 있으며 이와 직간접적으로 결부된 좌파 세력이 맹목적인 자주외교와 민족주의 노선을 증폭시켜 왔다”고도 합니다. 한마디로 더불어민주당과 그 전신 정당들의 정부가 ‘빨갱이’였다는 말 아닙니까?
 
김 차장의 글은 ‘신아시아연구소’가 내는 학술지 ‘신아세아’에 실렸는데, 이 연구소는 MB정부에서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을 역임한 이상우(85) 전 한림대 총장이 1993년에 만들었습니다. 이 이사장의 서강대 정외과 교수 시절 애제자인 김 차장이 부소장이고, 얼마 전 경질된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북한인권대사를 지낸 이정민 연대 교수 등이 핵심멤버입니다. 김 차장은 지난해 8월 이 연구소가 '신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와 한미 관계'를 주제로 주최한 비공개 정책간담회에서 발제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이상우 이사장은 2017년 <더스쿠프>인터뷰에서 “미국 쪽에 줄을 서라. 미국이라는 줄이 끊어지면 바로 밟으려 들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김태효의 스승 이상우 신아시아연구소 이사장 “중국에 양다리 걸치기는 자살행위”
 
2018년 1월과 2022년 9월 <월간조선>에도 “국가안보를 위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일본과의 협력이다. 일본의 협력이 없으면 우리는 북한과 전쟁을 할 수 없다”, "중국 눈치 보고 양다리 걸치기 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자살행위”, “신냉전에서는 군사력보다 더 중요한 게 이념과 체제,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우리의 살길”, “그 (한일 위안부 합의 파동)시절 일본 측 인사들을 만나면 ‘너희도 나라냐?’고 하는데, 정말 할 말이 없더군요”, “(한일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이고 미래…,보상할 것이 있으면 민간 차원에서 하고, 나머지 부분에서 국가 간에 협력할 것은 하면서 앞으로 나가야죠”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전시작전통제권도 우리가 받으면 안 된다"면서 심지어 "전쟁이 나면 우리가 이길 수 없다. 전쟁을 지휘할 만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이들은 공격적 현실주의에 기반한 힘에 의한 평화, 이념 중심, 도덕적 우월주의,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운 미국 네오콘(neoconservative·신보수주의자) 판박이 아닙니까. 
 
윤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에 ‘도청 불문’, ‘과거사 불문’하며 일방적인 막무가내 외교를 하는 배후에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하준 “미중 경제는 샴쌍둥이…미중 갈등, 미소 냉전과는 달라”
 
이들의 기본 인식대로 현재 미국과 중국은 총만 들지 않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일까요?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꼽히는 장하준 런던정경대 교수는 현재 미중 경제 관계는 "샴 쌍둥이”라고 표현합니다. 중국이 미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고, 미국이 오랜 기간 임금을 크게 올리지 않고 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서 싼 값에 소비재를 들여왔기 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때문에 물가가 안정적 수준에서 제어가 가능했습니다. 장 교수가 현재의 미중 갈등이 예전의 ‘미소 냉전’과는 다르다고 못 박는 이유입니다.
 
중국과 각별하고 미국과도 관계가 깊은 싱가포르의 베테랑 외교관인 빌라하리 카우시칸 전 외교차관은 미중 신냉전이라는 표현을 “지적으로 가장 게으른 비유”라고 꼬집습니다.
 
국내 국책기관인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도 ‘2023년 국제정세전망’에서 미중 갈등에 대해 “상호의존적 경제 관계와 군비경쟁의 수준 등을 고려할 때, 냉전적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습니다. 중일 관계와 러일 관계에 대해서도 “냉전적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며 “2022년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과도 안정적인 관계를 추구했다”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과 마찰하는 한편으로, 포드가 세계 최대 배터리업체인 중국 닝더스다이(CATL)의 기술, 장비, 인력을 활용한 배터리 공장을 미시간주에 지어 협력관계를 구축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성과로 내세운 ‘워싱턴 선언’의 경우 한미 정상이 사인도 하기 전에 미국은 중국에 사전 설명했습니다. 미중 군사당국간 채널은 100개가 넘습니다. 지난해 중일 교역은 오히려 증가했고, 군사당국 간 핫라인까지 만들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외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내외가 지난해 11월 17일 태국 방콕 왕립 해군 컨벤션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갈라 디너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설령 지금이 미중 신냉전의 초입이라 한다면, 그 승자는 누구이고 언제쯤 그 승패가 가려질까요?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향후 30년 내에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이고, 세계가 미국과 중국에 끼어 있는 상태로 갈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미소 냉전 46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 때의 소련보다 현재의 중국이 훨씬 강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냉전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라는 미국 건국신화에 빠진 한국판 네오콘들이 ‘임진왜란·병자호란·구한말’의 허약한 조선으로 자기 비하하면서, ‘반자이 돌격’을 외치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낡은 이념에 잡혀 실리 추구 외교가 아니라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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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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