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을 하는 한 제보자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회사 실적이 너무 좋은데 주가는 곤두박질 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이 제보자는 회사 지배주주가 기관투자자를 통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누른다고 의심합니다.
해당 회사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배기업입니다. 지배주주 일가가 주식을 대량 갖고 있으며 그 때문에 상속 문제가 얽혀 주가가 오르면 지배주주에게 불리합니다. 그러니 억지로 누르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생깁니다. 국내 기업집단은 대부분 재벌가가 지배하고 있어 이처럼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형성합니다.
상속세를 생각하면 이는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물론 주가를 인위적으로 누르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지배주주가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지 확증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배당을 늘리거나 자사주 소각 등 주주친화정책을 할 유인은 줄어듭니다. 실제 재벌집단 내 상속이 걸린 회사의 배당은 극히 적은 편입니다.
상속문제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연결하는 키워드는 주가하방압력 외에도 더 있습니다. 일감몰아주기가 대표적입니다. 흔히 총수일가가 주식을 많이 가진 회사를 계열사들이 물심양면 지원해서 상속자금을 마련하는 식입니다. 계열사들의 자금이 비효율적으로 낭비되기 때문에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됩니다.
그보다 더 은밀하고 배임, 횡령 등 사법적 문제도 걸리는 형태는 비자금 형성입니다. 과거 재벌 일가가 비자금 문제로 재판을 받고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등으로 풀려난 사례가 많아 유전무죄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지금은 적발되는 경우가 뜸하지만 문제가 근절됐다고 보는 사람은 적은 것 같습니다. 일례로 지금도 조세피난처에 계열사가 생겼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자금의 돈세탁이 보통 조세피난처에 있는 회사에 검은 돈이 흘러갔다 환치기 등 몇단계를 거쳐 개인에게 흡수되는 식이니 조세피난처는 의심을 삽니다.
최근 모 기업집단의 건설사가 시공한 건물 천장이 붕괴된 사고가 있었습니다. 관계 당국이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당초 설계보다 철근이 부족했다는 의혹이 번졌습니다. 사건의 진위를 떠나 과거 비자금 사례에 비추면 부족한 철근은 부외자산으로 쌓입니다. 회사는 분명 필요한 철근을 구매했다고 장부엔 표시됐는데 무자료 거래로 빼돌려 돈을 남기는 식입니다. 철근을 되팔 수도 있고 애초에 철강사로부터 사지 않은 철근값이 비자금으로 둔갑할 수 있습니다. 건설사로부터 워낙 이런 은밀한 주문이 많다보니 철강사들도 비슷하게 부외자산이 쌓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실이 쌓이다 보면 장부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과거 조선업과 건설업 등에 빅배스가 많았습니다. 부실회계를 한번씩 털고 가는 수법입니다. 재벌집단은 경영세습을 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천문학적 상속세는 정상적 방법으로 풀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부정이 존재하는 것이고,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코리아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인식됩니다.
윤석열정부 임기 1년간 국정과제 법률안 총 103건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주된 내용은 부동산 세제부터 법인세 인하, 투자세액공제 확대 등 친기업, 규제완화 색채가 짙습니다. 기업집단 숙명으로 인해 부패와 부실이 근절되기 어렵다면 감시망을 늦추는 규제완화도 능사는 아닙니다.
이재영 산업1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