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지난 2편에서는 천사 이나리우스와 악마 릴리트의 이야기를 소개했는데요. 천상과 지옥의 전쟁에 지친 이 둘은 도망쳐, 세계석이라는 보석으로 그들의 낙원 '성역'을 만듭니다. 여기서 천사와 악마의 혼혈종 '네팔렘'이 태어납니다. 네팔렘의 힘을 두려워한 동료들이 자식을 없애자고 하자, 릴리트는 남편 이나리우스를 뺀 나머지를 몰살합니다. 경악한 이나리우스는 릴리트를 성역 밖으로 쫓아내고 네팔렘의 힘을 약화시킨 뒤 잠적했습니다. 이후 악마들과 천사 이나리우스는 각각 '삼위일체단'과 '빛의 대성당'이라는 종교로 세력을 다툽니다.

 

그 사이 릴리트가 몰래 성역에 돌아옵니다. 그리고 전염병으로 가족을 잃고 종교를 혐오하는 농부 울디시안에게 접근해, 네팔렘의 힘을 일깨웁니다. 릴리트는 울디시안에게 선교사 살인 누명을 씌워 궁지에 몰아넣고 종교에 대한 분노를 자극합니다. 네팔렘의 능력을 깨우친 울디시안은 악마가 삼위일체단을 지배하고 있고, 상대편인 천사 역시 인간을 졸 취급하는 현실에 분개해 두 교단을 무너뜨리기로 합니다. 그는 인간이 자기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천부의 권리'를 내세워 민중 혁명을 일으킵니다. 릴리트는 오빠 루시온에 의해 자신의 정체를 울디시안에게 들켜 쫓겨납니다. 울디시안은 삼위일체단을 격파하며 이들의 지도자 루시온을 제거합니다. 오빠가 사라진 지금, 동생 릴리트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릴리트는 오빠의 소멸로 삼위일체단을 장악한 뒤, 수 차례 울디시안 일행을 공격하지만 번번이 집니다. 울디시안이 삼위일체단의 사원을 무너뜨리며 릴리트를 잔해 속에 묻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나리우스가 릴리트를 몰래 구해냅니다. 자기 스스로 탈출했다고 믿은 릴리트는 전 남편의 힘을 두려워합니다. 이나리우스는 전 아내를 다시 공허로 추방하며 옛 사랑에 대한 애증을 드러냅니다.

 

"그래, 너를 구했어, 옛사랑! 수백 년 전에 약속했지. 나는 결코 너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누구도 너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 (중략) ··· 잘 가, 나의 옛사랑···. 안녕···."(죄악의 전쟁 2권: 용의 비늘)

 

 

 

이나리우스는 울디시안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자신도 못 바꾼 세계석의 구조를 변경한 이 농부를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야 세계석의 구조를 되돌려놓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천부의 권리를 내세워 빛의 대성당도 부수려는 울디시안의 숨통을 끊기로 합니다. 그러나 울디시안의 꿈에 침투했다가 악마와 싸울 때도 느끼지 못한 위기를 경험하고는, 사제 가무엘을 보내 울디시안을 공격합니다. 가무엘이 암살에 실패하자, 스스로를 에디렘으로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손으로 성역을 파괴하리라 다짐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마음대로 주물러온 세상이라, 진심은 아니었죠.

 

이나리우스는 오랜 세월 종교로 인간 세상을 양분해온 대악마와 손을 잡습니다. 디아블로는 울디시안이 다른 인간들의 힘을 끌어올린다면, 천사와 악마 어느쪽도 인간을 지배 못한다는 계산으로 손 내민 겁니다. 둘은 울디시안 암살에 실패하고 릴리트에게 죽은 삼위일체단 고위 사제 말릭의 영혼을 이용합니다. 말릭은 한 여자 마법학자 몸을 빼앗아 울디시안의 이름을 들먹이며 마법학자 혈족 평의회와 조합 지도자들을 죽입니다. 디아블로는 울디시안에게 접근해 공포를 주입하려다 반격 당하고 물러납니다.

 

그 사이 더 큰 문제가 산사태처럼 쏟아집니다. 성역의 존재를 알게 된 천상의 군대가 과대망상 천사의 낙원을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트락울이 성역의 진짜 위치를 가리려 애썼지만, 성역 발견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의절을 선언했던 아들 라트마는 생각하기 싫은 방법을 택합니다. 아버지를 찾아가, 이미 티리엘이 성역에 왔으니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울디시안과 손 잡으라 설득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광기에 눈 멀었습니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내에 이어 아들마저 공허로 쫓아냅니다. 라트마는 울디시안의 동생 멘델른과 용 트락울이 구해줍니다. 하지만 트락울이 라트마를 찾느라 힘을 분산시킨 사이, 천상의 군대가 성역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냅니다.

 

먼저 성역에 내려온 티리엘은 변절한 천사의 가장 큰 죄는 바로 인간을 창조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는 악마의 피가 섞인 인간의 존재 자체를 지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사들이 곧 내려온단 사실을 안 울디시안은, 힘을 합칠 생각은 않고 자신을 없앨 생각에 사로잡힌 이나리우스를 증오하며 빛의 대성당으로 진군합니다. 이때 지옥의 군대도 땅을 뚫고 성역에 올라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나리우스와의 동맹을 깨고, 천사·인간과 전쟁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침내 울디시안은 빛의 대성당 앞에서 이나리우스와 전면전을 벌입니다. 땅과 풀, 비바람과 불이 오간 사투 끝에 농부 아들이 미친 천사 아버지를 때려 눕혔습니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찢어진 하늘에서 갑옷 입은 천사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 와중에 이나리우스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울디시안은 이 천사보다 밝은 빛을 내며 세계석과 아버지의 연결을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보잘것없어진 아버지를 은색 구체에 가둬버립니다.

 

 

 

곧이어 티리엘이 울디시안을 제압했고, 날개 달린 군대를 시켜 '정화'를 진행하려 합니다. 이때 땅에서 분화구와 함께 악마떼가 솟구쳤습니다. 천사와 악마, 인간이 한데 엉킨 살육전이 시작됐습니다.

 

티리엘의 속박을 푼 울디시안은 허망한 전투로 쌓여가는 시체들을 보고 울분이 복받쳤습니다. 세상이 멸망하면 아무도 성역을 애도하지 않을겁니다. 울디시안은 악마를 분화구 아래로 돌려보내고 천사들도 갈라진 하늘 밖으로 날려보냅니다.

 

하지만 이번엔 성역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울디시안은 자신이 증폭한 힘이 원인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을 구하려 할 때마다 그의 어두운 힘이 성역 곳곳에 퍼졌습니다. 이제 그 힘을 거두려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수천 배 증강된 그 힘들은 성역의 일부가 돼 있었습니다.

 

이 모든 힘을 흡수한 울디시안은  릴리트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이 참을성 없는 악마는 인류가 자기 재능을 제대로 성숙시킬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울디시안은 너무 빨리 성장했습니다.

 

울디시안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동생과 친구들을 내려다봅니다. 그는 트락울의 안내로 하늘을 초월한 '저편'에 그 힘을 분출합니다. 이윽고 순수한 힘의 폭발과 함께, 사람을 사랑한 농부 울디시안이 세상과 작별합니다. 울디시안이 희생한 순간, 그는 천사와 악마를 초월했고 성역과 그 주변을 둘러싼 모든것 자체였습니다. 그 영향으로 먼저 숨졌던 친구 아킬리오스와 방금 전사한 세렌시아가 되살아납니다.

 

이윽고 대천사 다섯 명이 나타나 앙기리스 평의회를 엽니다. 두 손이 묶인 이나리우스가 이들 앞에 무릎 꿇었고, 라트마와 멘델른, 울디시안의 친구들은 아름답고 섬뜩한 다섯 대천사에게 다가갑니다.

 

대천사들은 '원죄의 자녀들'과 성역의 존속을 두고 논쟁합니다. 인류의 장남 라트마는 인류에게 기회를 주면 이들이 놀라운 일을 해내고 균형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도 있다고 설득합니다.

 

 

 

천사들의 투표가 시작됐습니다. 용기의 대천사 임페리우스는 이나리우스를 영원히 가두고 인간을 멸하자고 합니다. 희망의 대천사 아우리엘은 인간에게 '우리의 싸움'을 끝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힘을 기르게 하자고 말합니다.(절멸 1 : 존속 1)

 

지혜의 대천사 말티엘은 결과가 어떻든 자신과 상관 없다며 기권합니다. 운명의 대천사 이테리엘은 인간이 어떤 악마보다 잔인해질 수 있지만, 빛을 섬겨 자신들의 역할을 능가할 가능성도 있다며 살리는 데 한 표를 던집니다. (절멸 1 : 존속 2 : 기권 1)

 

남은 한 표가 절멸이라 해도 2대 2 동수입니다. 하지만 찬반이 같을 때 인간 편을 들어주자는 투표가 아니니, 찬반 동수일 경우 인간의 운명이 위태롭습니다.

 

인간을 혐오하던 정의의 대천사 티리엘은 뜻밖에도 남은 한 표를 인간을 살리는 데 던집니다. "그 필멸자, 울디시안 울디오메드는···자신의 동료를 보살피려는 생각에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의무는 아니었지만···그의 소망이었습니다. ··· (중략) ··· 난 그들을 혐오스러운 것들이라고 불렀지만··· 내가 틀렸습니다! 난 그들을 살리는 쪽에 투표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어떻게 변해갈지 지켜보고··· 감탄하고 싶습니다."(죄악의 전쟁 3권: 가려진 예언자)

 

비통한 임페리우스가 대책을 묻습니다. 악마들이 성역에 활개치면 천사가 성역을 지켜야 하느냐고요.

 

이때 증오의 군주 메피스토가 나타나 휴전을 제안합니다. 성역이 어디까지 성장할 지 지켜보면서 아무도 개입하지 말자는 겁니다. 메피스토는 자기 아들 딸이 성역을 구하려 한 점을 들먹이는데, 루시온과 릴리트의 목적은 지옥에 대한 인류의 헌신이었습니다.

 

메피스토는 휴전 조건으로 '딸 도둑' 이나리우스를 요구합니다. 이나리우스는 미친듯이 웃으며(이미 미쳤지만) 지옥으로 끌려갑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인간의 기억'입니다. 아우리엘은 인류가 울디시안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천사와 메피스토는 숫자가 적은 라트마와 동족은 놔두고 울디시안의 동생과 친구들, 앞으로 살아갈 인류의 기억은 지우기로 합니다. 티리엘이 하얀 빛으로 멘델른과 아킬리오스, 세렌시아를 감쌉니다.

 

세 사람은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울디시안은 전염병으로 눈 감았다고 기억됩니다. 멘델른은 여행길에 올라 라트마와 재회합니다. 트락울이 멘델른의 기억을 지켜준겁니다. 그리고 새 이름을 원하는 그를 '칼란'이라 부릅니다. 칼란은 자신의 모든 기억을 기록하기로 합니다. 에디렘이 다시 일어설 때, 울디시안의 희생을 기억하며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죄악의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종교에서 등을 돌립니다. 끔찍한 상흔에서 벗어나기 위해 케잔을 '케지스탄'으로 바꿔 부릅니다. 대신 민중은 마법단에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기원전 1799년). 마법단···. 성역에 평화가 이어질 리 없겠네요.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