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쫓겨난 대악마, 인간 땅에 묻히다

(이범종의 게임 읽기)디아블로④ 마법단 전쟁과 어둠의 유배
죄악의 전쟁 후 종교에서 등 돌린 사람들
악마 소환 둘러싼 갈등으로 마법단 전쟁
지옥에선 쿠데타…디아블로 성역으로 쫓겨나
티리엘과 호라드림, 대악마 셋 영혼석에 가둬

입력 : 2023-06-03 오전 6:00:00
무수한 생명이 하나의 세계를 살다 갑니다. 뱀은 온도의 세계를, 박쥐는 초음파의 세상을 삽니다. 반면 인간은 그저 주어진 하나의 세계를 사는 데 만족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펜을, 때로는 마우스를 들고 빅뱅에 버금가는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며 새 세상을 창조해냅니다. 그렇게 연극 무대가 세워지고 영화가 개봉됩니다. 거울과도 같은 세상으로 초대된 관객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웃고 웁니다. 응시하는 관객,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관객을 아예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영화도 있습니다. 바로 게임입니다. 주체가 된 관객을 우리는 게이머라 부릅니다. 주말 아침 플레이스테이션을 켜는 아버지, 숙제 끝내고 컴퓨터 앞에 앉은 딸은 어느 세상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려는 걸까요. 새롭게 준비한 코너 '이범종의 게임 읽기'는 게임 속 세상을 든든히 받치고 있는 이 이야기들의 만듦새와 구조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첫 순서로 실시간 액션 롤 플레잉 게임의 기준을 세운 '디아블로'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게임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디아블로를 배경으로 만든 소설들을 참고해 기술합니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앞서 우리는 인간 세상 '성역'의 탄생과 천사, 인간, 악마가 뒤엉킨 대난투극을 돌아봤습니다. 고대 인간 네팔렘의 힘을 깨우친 농부 울디시안은 인간의 운명을 천사와 악마에게 맡길 수 없다며 '천부의 권리'를 선언하고는 천상과 지옥을 위협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힘이 성역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알게 된 그가 희생하면서 성역은 멸망의 위기를 넘깁니다. 천사들은 인간의 존재가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걸 절감합니다. 이에 천상의 통치 기구 앙기리스 의회에서 다섯 대천사가 인류의 생사를 건 투표를 합니다. 인간을 혐오하던 정의의 대천사 티리엘은 울디시안의 희생으로 마음을 바꿔, 인류 생존에 마지막 한 표를 던집니다. 이렇게 '죄악의 전쟁'이 끝납니다. 하지만 성역의 위기가 정말 끝난 걸까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다툼, 울디시안이 보여준 인간의 잠재력으로 천상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대악마의 음모, 이를 막으려는 천사와 마법학자들의 '대악마 사냥'이 지금 시작됩니다.
 
성역의 한 지역인 스코스글렌. (사진=블리자드)
 
성역에서 마법은 문명 초기부터 있어왔습니다. 마을이 도시로 커가는 동안, 일각에선 세계를 탐험하며 자연 원소의 힘을 조율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마법이 정립돼 학파가 나뉘고 마법단이 생겨납니다. 가장 유명한 세 집단이 비제레이, 에네아드, 아무이트입니다.
 
울디시안의 희생으로 끝난 죄악의 전쟁(케지스탄력 기원전 1809년) 이후, 마법단은 각종 규칙과 규제로 악마 소환을 금지합니다. 전쟁 이면에 천상과 지옥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악마들이 성역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가 비제레이 마법단의 악마 소환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제레이는 금지된 악마 소환을 몰래 반복해왔고, 이를 알게 된 나머지 마법단과 갈등이 폭발합니다. 이를 '마법단 전쟁'이라 부릅니다. 처음엔 악마 군대를 동원한 비제레이가 우세했지만, 악마 소환의 대가를 직감한 마법사 호라존이 이 군대를 부리는 동생 바르툭을 쓰러뜨립니다. 한때 정부를 지배할 정도로 강했던 마법단의 시대가 이렇게 끝났습니다(케지스탄력 기원전 210년~203년).
 
성역 땅의 메마른 평원. (사진=블리자드)
 
쫓겨난 3대 악마, 인간에게 붙잡히다
 
이후 불타는 지옥에선 대악마에 대한 고위 악마들의 쿠데타 '어둠의 유배' 사건이 일어납니다(케지스탄력 964년). 대악마들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데 정신이 팔려, 천상과의 전쟁인 '영원한 분쟁'에 소홀해졌다는 명분이었습니다.
 
결국 성역으로 쫓겨난 파괴의 군주 바알, 증오의 군주 메피스토, 공포의 군주 디아블로는 수십년 간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사이를 이간하며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실을 천상이 안다면 인류가 다시 위험해지겠죠. 티리엘은 앙기리스 의회 몰래 대악마를 추적할 마법학자 집단 '호라드림'을 결성합니다. 드높은 천상은 천사의 인간 세계 개입을 금지하지만, 이를 방관했다간 인류는 물론 천사들도 위험해질 겁니다. 티리엘은 성역을 탄생시키는 데 쓰인 세계석 조각으로 메피스토의 영혼석 사파이어, 바알의 영혼석 호박, 디아블로의 영혼석 루비(또는 핏빛 보석)을 빚어내 호라드림에게 영혼 포획 임무를 줍니다.
 
케지스탄(옛 케잔) 도심에서 제일 먼저 잡힌 건 메피스토였습니다. 호라드림은 그를 가둔 사파이어 영혼석을 신흥 교단 자카룸에 맡겼습니다. 자카룸은 쿠라스트 부근 밀림 지대에 트라빈칼 사원을 세워 영혼석을 보호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이 교단의 상당수가 메피스토 영향으로 타락합니다.
 
바알은 아라녹 사막에서 잡힙니다. 하지만 바알이 날린 통한의 공격에 호박 영혼석이 깨졌습니다. 호라드림이 남은 조각 중 가장 큰 것으로 바알을 가뒀지만, 그 정수를 영원히 가둘 수는 없었습니다. 호라드림 지도자 탈 라샤는 에네아드 마법단 출신 졸툰 쿨레의 제안대로 바알을 자기 몸에 가두기로 합니다. 티리엘은 고대 왕들이 잠든 묘실 깊은 곳에 묶인 탈 라샤의 심장에 바알의 정수를 박았습니다(케지스탄력 1004년~1010년).
 
호라드림 지도자 탈 라샤가 자신의 몸에 바알을 가두기로 한다. 이에 대천사 티리엘이 바알의 영혼석을 탈 라샤의 심장에 박는다. (사진=블리자드)
 
호라드림의 새 지도자 제레드 케인은 이후 10년 가까이 성역 서쪽 지역 칸두라스까지 디아블로를 쫓아 핏빛 영혼석에 가둡니다. 호라드림은 이 영혼석을 달산데 강 근처 동굴 미로에 숨겼습니다(케지스탄력 1019년).
 
티리엘의 명령으로 호라드림은 작은 수도원을 세우고 동굴에 지하 통로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세 악마 사냥 이후 영혼석의 힘에 집착한 졸툰 쿨레는 티리엘이 준 영혼석을 모방해, 천사와 악마의 정수를 가둘 수 있는 '검은 영혼석'을 만듭니다. 의도가 의심스럽죠? 호라드림 동료들은 이 위험한 동료의 목숨을 거두고 머리는 달구르 오아시스에, 몸은 어둠의 영역에 숨겼습니다. 이후 호라드림은 하나둘씩 줄어드는 학자집단이 됩니다. 검은 영혼석의 행방은 나중에 밝혀집니다.
 
'디아블로II'에서 증오의 군주 메피스토와 싸우는 영웅들. (사진=블리자드)
 
 
메피스토 영혼석 보관한 자카룸교, 주류가 되다
 
앞서 메피스토의 영혼석을 자카룸이 보관했다고 했지요. 이 종교는 마법단의 몰락 이후 다시 신앙이 힘을 얻으면서 급성장했습니다. 디아블로IV 도입 영상에서 한 남자가 "전능하신 아카라트시여 우릴 굽어살피소서"라고 기도하는 걸 보셨을겁니다.
 
아카라트는 사람 이름입니다. 그는 분쟁이 반복되는 속세를 떠나 북쪽 섬 나라 시안사이의 눈 덮인 봉우리에서 명상하는 교단에 들어갑니다. 아카라트는 어느날 밤 장엄한 빛이 반짝이고 힘의 물결이 하늘을 층층이 가로지른 모습을 봅니다. 아카라트는 자신이 천상의 존재 야에리우스(빛의 아들)를 봤다고 생각하고, 인간이 강력한 빛의 존재가 돼 우주의 모든 걸 바로잡으리라 예언하며 케지스탄을 순례합니다. 마법학자 데커드 케인은 연구서 '케인의 기록'에서, 아카라트가 목격한 야에리우스의 빛이 울디시안의 희생 장면이라고 분석합니다. 죄악의 전쟁 당시 울디시안의 희생으로 하늘이 번쩍인 순간이 정신세계의 반영으로 반복되는데, 깊은 명상에 든 자들이 이걸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아카라트는 설교가 충분했다고 느꼈는지 케지스탄의 밀림지대로 사라졌습니다. 그는 교단을 만들거나 거기에 이름 붙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단지 사람들의 마음에 선량함이 자라길 바랐을 뿐이지요.
 
하지만 추종자들이 내면의 빛을 따르는 자 '자카라'를 자처하며 자카룸을 만듭니다. 자카룸은 케지스탄 최상급 정치 지배 계급이 됩니다. 이후 교회 최고 권력자(쿠에헤간) 라키스가 서쪽에 식민지를 확보하고 '서부 원정지'를 세워 왕위에 오릅니다(케지스탄력 1060년).
 
인간들이 정복과 왕국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안, 호라드림이 미궁의 동굴에 가둔 공포의 근원이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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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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