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세라는데…소비자 체감은 "글쎄요"

물가 상승률 19개월 만에 가장 낮지만…체감 물가 여전히 높아
먹거리 지표 품목 4개 중 1개…물가 상승률 10% 상회
'그리드플레이션'이 고물가에 한몫한다는 분석도

입력 : 2023-06-07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최근 물가 상승률이 1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지만, 소비자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물가는 여전히 높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는 석유류를 제외한 품목의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라면 등 소비자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먹거리 품목들의 가격은 오히려 치솟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품 기업들이 원부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좀처럼 가격을 낮추지 않는 행태도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물가 상승률 1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지만…라면은 14년 3개월 만에 최고치
 
물가 상승률은 4개월 연속 둔화하는 추세입니다. 6일 통계청의 '2023년 5월 소비자 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는 111.13(2020년=100)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 상승했습니다.
 
이는 지난 2021년 10월 3.2%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 5%에서 올해 1월 5.2%로 소폭 올랐지만, 이후 △2월 4.8% △3월 4.2% △4월 3.7% 등 점진적으로 둔화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사실 이 같은 물가 상승률 둔화는 석유류 감소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석유류는 1년 전보다 18% 내렸는데요, 이는 2020년 5월(-18.7%) 이후 3년 만의 최대 감소폭입니다.
 
또 석유류, 농산물 등을 제외한 근원물가도 4.3% 상승하며 전월(4.6%) 대비 상승폭이 둔화했습니다. 근원물가는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파악하는 지표입니다.
 
이렇게 거시적인 물가 지표는 전반적으로 둔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먹거리 품목 지표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높은 수준의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의 먹거리 지표인 가공식품 및 외식 부문의 세부 품목 112개 중 27.7%인 31개는 물가 상승률이 10%를 상회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잼이 35.5%로 가장 높고 △치즈 21.9% △어묵 19.7% △라면 13.1% △피자 12.2% △커피 12% △빵 11.5% △햄버거 10.3% △김밥 10.1% 등도 높았습니다. 소비자들이 사실상 자주 접하는 외식 품목 상당수가 10%대의 높은 상승률을 보인 것이죠.
 
특히 라면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9년 2월 14.3% 이후 14년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기업들의 과도한 인상…물가 상승 악순환
 
이렇듯 먹거리 품목의 급등세가 이어지는 것은 기업들이 줄줄이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서민 먹거리로 꼽히는 라면과 관련해 농심은 작년 9월 라면 출고가를 평균 11.3% 인상했습니다. 이후 팔도, 오뚜기는 같은 해 10월 제품 가격을 9.8%, 11% 각각 높였고, 삼양식품은 11월 평균 9.7% 인상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국제 곡물 가격이 높게 올랐고, 이에 따른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것이 라면 업계 측 설명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급등했던 원자잿값이 최근 들어 점차 진정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등의 경우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20%가량 뛰며 호실적을 거둔 것을 감안하면, 이들 업체가 과도한 폭리를 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식품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가격을 속속 올리는 상황입니다. 교촌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앤비(F&B)는 지난 4월부터 치킨 업계 중 선제적으로 가격을 품목별로 500~3000원 높였습니다.
 
또 롯데리아는 올해 2월 총 84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5.1% 높였고, 같은 달 써브웨이는 총 34종 샌드위치 판매 가격을 평균 9.1% 인상했습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업의 탐욕(Greed)에 의한 인플레이션을 뜻하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으로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인데요.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표 물가와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 괴리 발생에 이 그리드플레이션이 한몫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 경제 구조가 선진국들이 많이 포진한 미주 지역, 유럽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기업들의 지나친 이윤 추구는 분명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며 "소수의 기업들만 가격을 인상한다면 문제가 크지 않지만, 기업들이 눈치를 보며 연쇄적으로 가격 인상 행렬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의 실효성 있는 가격 인상 자제 방안이 마련돼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라면을 고르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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