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일본이 지난 12일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 위한 시운전에 들어갔습니다. 오염수 방류를 확정짓고 사실상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하겠다는 겁니다. 한국 국민 뿐만 아니라 일본도 불안을 호소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 정부·여당도 국민들의 불안을 ‘괴담’으로 치부하면서 논란은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도쿄전력은 14일 현재 시운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시운전을 통해 오염수가 아닌 민물을 바닷물과 섞어서 방류 관련 설비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겠다는 계획입니다. 일본은 10~14일 가량의 시운전을 끝내고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승인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입니다. 이후 IAEA가 최종 보고서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오염수를 방류하게 됩니다.
이는 일본의 기존 입장과 다른 이야기입니다. 애초 일본은 IAEA 최종 보고서를 통해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안전성을 검증받고, 그 이후 방류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안전성을 이미 검증된 것으로 보고, 시운전을 통해 사실상 방류 준비에 돌입한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서 참석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대통령실 제공)
한국 정부는 일본 대변인?…봇물 터진 "오염수 마실 수 있다"
윤석열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일본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후쿠시마 오염수가) 완전히 과학적으로 처리된 것이라면 세계보건기구 음용 기준에 맞다면, 마실 수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마실 수 있다’는 발언은 비단 한 총리만은 아닙니다. 지난달 15일 방사선 입자물리학자인 웨이드 엘리슨 영국 옥스퍼드 명예교수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초청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저는 지금 내 앞에 희석되지 않은 후쿠시마 물 1리터(ℓ)가 있다면 바로 마실 수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그 뒤, 같은달 19일 국민의힘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태스크포스(TF)는 엘리슨 교수를 다시 국회로 초청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성일종 TF위원장은 “정치가 과학을 오염시키면 피해는 국민 어민들이 받게 된다. 정치가 과학을 이길 수 없다”고 초청 취지를 밝혔습니다.
정부·여당의 이 같은 발언은 일본 정부가 주도한 ‘푸드 액션’ 캠페인(캠페인명 : 먹어서 응원하자!)과 유사합니다. 일본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피폐해진 지역 부흥을 위해 정치인, 연예인 등을 동원해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홍보해왔습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지난 2013년 후쿠시마 근해에서 잡은 문어를 시식하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게다가 일본은 그보다 앞선 2011년 한·중·일 정상회의 당시 후쿠시마산 채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쿠시마산 오이를 먹고 있는 사진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2차 전국행동 '전국어민대회' 참가자들이 구호을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한국 국민들은 '반대'…"오염수 방류, 일본의 국제범죄"
국내 여론은 부정적입니다. 리서치뷰가 지난달 25일 한국환경운동연합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오염수 방류가 시작될 경우 수산물 소비량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매우 또는 다소 줄어들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72.3%에 달했습니다. (해당 조사는 전국 성인 1000명 대상, 지난달 19~22일 조사했습니다. RDD 무선 100%·ARS 자동응답조사로 응답률은 2.7%,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게다가 커뮤니티 등에서는 ‘오염수가 안전하다면 일본 내에서 사용하지, 왜 방류하나’라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할 경우 다핵종제거설비(알프스·ALPS)로도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 등이 수산물을 통해 인체로 유입,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면서 반발 여론이 거세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수산물을 먹지 않는다고 해도 필수 식품인 소금은 피할 수 없어 불안은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소금 값 고공행진과 소금 사재기 행렬이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어민들의 반발도 날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제주도 해녀협회, 어촌계장협의회 등 농어민 단체 등 1000여명은 지난 13일 제주 노형동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국제적 범죄 행위나 다름없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를 결사 반대한다”며 “일본 정부는 해양투기를 포기하고 자국 내에 보관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 전날인 12일에도 국회 앞에서 전국어민총연맹 회원 등 2000여명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 어민 생존권 결의대회’를 열었습니다. 특히 이들은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고 발언하는 정부·여당 인사들의 발언에 대한 분노가 높았습니다. 한 총리가 지난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도를 지나친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수산업 종사자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사법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 데 대한 반발입니다.
국내 여론이 날로 악화되자, 윤덕민 주일본 한국대사는 14일자 일본 지지통신 인터뷰에서 “한국 국민의 건강안전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로 국민을 설득하려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일본이 한국 국민에게 직접 안전성을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어민들도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자국 어민 등 관계자 이해 없이는 방류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만큼 후쿠시마 주민 어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남은 상황입니다. 후쿠시마현 노자키 데쓰 어업조합연합회장은 지난 10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을 만나 “계속해서 해양방류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일본은 자국 어민들 반대에도 방류를 계획대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13일자 NHK 보도에 따르면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내달 초 일본을 방문하는 일정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일본 기시다 총리는 그로시 사무총장을 만난 뒤, 오염수 방류 시작 시점을 확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명목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들러리를 서고 있으나 오히려 이런 태도가 근본적으로 한일관계 개선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형국입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