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690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 기구 판정이 나오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대응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법률 비용과 지연 이자까지 합하면 1300억원의 혈세 지출이 불가피하면서 판결 취소 신청을 결정할 지 주목됩니다.
21일 법무부에 따르면 정부는 엘리엇이 제기한 국제투자분쟁 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과 관련해 중재판정부로부터 690억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엘리엇이 청구한 9917억원 중 배상 원금은 7%에 달하며 정부는 93%의 승소라는 입장이었지만, 법률 비용 372억원과 5%의 연복리 이자까지 합하면 1300억원에 달하는 배상이 예상됩니다.
ISDS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정책으로 손실을 봤을 때 제기할 수 있습니다. 다만 '3심제'인 법원 판결과 달리 항소가 불가능한 '단심제'이기 때문에 한 번의 판정으로 법원 판결만큼 강한 구속력을 갖습니다. 정부는 이미 이란 다야니 사건으로 800억원, 론스타 사건으로 3000억원이 누적된 상태에서 엘리엇 사건으로 1300억원이 추가되면 5000억원이 넘는 배상금을 세금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리스크 딛고 취소 신청?
정부가 ISDS 판정 취소 절차를 밟을 수 있으나 리스크가 뒤따릅니다. 판정이 나기까지 분쟁 해결 절차에 5년이 소요되면서 이미 지연 이자도 막대하게 불어났는데, 2차 중재가 진행될 경우 결국 당사자들의 재정적 부담은 더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취소 절차는 ISDS 시스템상 패소판정을 받은 당사자가 중재판정을 불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데, 실제 사례를 보면 취소로 바뀌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오현석 계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지난해 낸 논문 'ICSID 취소결정의 최근 동향 및 사례 분석'을 보면 2020년 말 기준 165건의 중재판정 취소 신청 중 19건(11.5%)만이 전부 또는 일부 취소됐습니다.
취소 요건 또한 제한적입니다. 판정부가 적절한 방법으로 구성되지 않거나 절차 규칙에 중대한 위반이 있는 경우 등입니다. ISDS에서 패소한 피신청국은 정치적·재정적 손실 등을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중재판정 취소절차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정부는 판정문 분석 후 국익에 부합할만한 향후 계획 등을 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는데, 관건은 중재 판정 취소 요청입니다.
법무부는 "우선 판정문 분석 후 취소 신청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엘리엇 사태와 관련해 "결정문을 분석하고 있고 추가 조치 계획에 대해선 숙고한 뒤 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