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TV에선 기혼 여성이 알파맘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또 남편이 직장 스트레스와 아내의 잔소리를 감내해야 하고 어깨도 펴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 사이 혼자 사는 연예인은 브런치로 하루를 시작해 폼 나는 캠핑을 떠나고 친구랑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감합니다.
정도야 차이가 있지만, TV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현실을 닮았습니다. 결혼은 전근대적 사회적 제도이지만, 희생을 각오하면 2세를 기르며 얻어지는 무형의 기쁨이 있다고 강조됩니다. 혼자 살면 결국은 외롭고 나이들어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사회적으로 건강이 왕성할 때 짝을 만나는 것이 이득이라는 케케묵은 논리로 압박합니다.
MZ세대까지 찾아 내려가지 않아도 언젠가부터 새로운 가설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움이나 경제적 문제 등 몇가지만 해결하면 싱글로 사는 게 뭐가 문제냐는 반론이 등장한 것입니다. 굳이 결혼해서 애도 키우고 가족을 늘려 삶의 중요한 시기를 내 뜻대로 하지 못하는 것보다 그게 나은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출산율에 가려졌지만, 작년 혼인건수도 역대 최저입니다. 1996년만 해도 43만건이었으나 어느덧 20만건도 무너져 10만건대입니다.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33.7세, 여자 31.3세로 10년 만에 남자는 1.6세, 여자는 1.9세 높아졌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저출산 대책으로 이미 많은 돈을 들이고 있습니다. 몇 년간 몇백조가 투입됐다더라 등의 기사는 이제 특정 시기가 되면 등장하는 소식 같이 여겨질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혼인건수는 역대급이란 말이 모자라고, 출산율은 전쟁이나 내전을 겪는 국가보다 낮습니다.
백약이 무효하다는 절망보다는 오히려 보다 정밀한 진단과 정책의 전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혼연령 혹은 초산연령은 알려진 것보다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대부분의 저출산 정책은 이미 결혼 혹은 출산한 가정을 대상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입니다.
상당수의 보고서와 논문을 보면 초산연령은 저출산 현상과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서는 출산율이 오르는 데 있어 출산 지연 효과를 완화한 것이 절반 가량의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초산이 늦어지면 아무리 정책적으로 지원해도 다산을 기대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혼인 패널티’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결혼하면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인거죠. 주택 구입이나 대출, 세제 지원을 살펴보니 기혼일 경우에 주어지는 혜택보다 미혼일 때 주어지는 혜택이 오히려 더 크더라는 시각입니다. 혼인 인센티브를 줘도 모자랄 판에 혼인 패널티라뇨.
싱가포르의 국민 상당수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에 해당하는 HDB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환매 가능한 임대주택인데 특이한 점은 청년 가운데 일정 소득 이하 혼인자에게 공급 자격이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당장 결혼을 하지 않아도 결혼 예정까지 가능하며, 상당수의 보조금이 뒷받침되니 비교적 적은 부담으로도 주택 구입이 가능합니다.
싱가포르의 사례가 우리와 똑같진 않다지만, 누군가와의 결혼을 결심하려면 100가지 체크리스트를 다 통과해도 힘들 우리 청년들에게 그 문턱을 낮춰줄 필요가 있진 않을까요. 청년층에 대한 결혼 조건부 주택 지원은 주택 정책이기도 하지만, 저출산 대책이기도 합니다.
결혼이 희생으로만 여겨지는 시대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출산율은 여전히 내전국가와 비슷할 겁니다. 정책의 세밀함을 갖춰 결혼과 출산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방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싱글보다 결혼이 더 좋은 세상이라면, 내려가기만 하는 출산율에 변화를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박용준 공동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