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용훈·정해훈·김유진 기자] 건설 현장의 잇단 대형사고로 국민 불안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초 발생한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인천 검단 지하주차장의 붕괴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로 인한 정부의 '재발방지대책'도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전문가들은 비슷한 사고들이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며 허술한 관리체계 정비와 불법하도급 등 구조적 고질적 문제는 해결해야할 과제로 지목했습니다.
9일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 집계를 보면 최근 2년간 국내 건설 현장에서 부실시공이 적발돼 벌점이 부과된 사례는 698곳(중복 포함)에 달했습니다. 또 지난해 기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곳 중 7곳이 벌점을 부과받는 등 대형 건설사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업계 1위 삼성물산은 합산 벌점 0.75점을 받았습니다. SK에코플랜트(0.66점)와 롯데건설(0.65점), 현대건설(0.62점), HDC현대산업개발(0.50점) 등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 4월 인천 검단 아파트에서 벌어진 붕괴 사고도 부실 시공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친 요인은 필수적으로 들어갔어야 할 철근(전단보강근)이 대거 누락된 점입니다.
특히 지하주차장의 설계 구조상 32개 모든 기둥에 철근이 필요했지만, 이 중 15곳 철근이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표기됐습니다. 설계 도면을 확인·승인하는 감리 과정에서는 이런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시공 단계에서는 당초 설계과정에 표기됐던 철근을 추가 누락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사고 부위의 콘크리트 강도는 설계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발생한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도 무단 구조 변경과 콘크리트 원재료 불량, 부실 감리 등 비슷한 이유였습니다.
지난해 1월 발생한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는 공법 무단변경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사진은 지난해 1월12일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건설현장 모습.(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부실시공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건설현장의 전문성 결여와 허술관 관리체계를 지적합니다.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석좌교수는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의 경우 이미 설계단계에서부터 부실이 시작됐지만 더 큰 문제는 실제 현장에서 철근이 누락되는 동안 '공사가 안전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 않다' 등 해당 사실을 판단할 만큼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행 건축법이 가진 한계를 지적합니다. 현행법상 모든 건축 설계와 감리는 건축사만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실제 공사현장에는 건축사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감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입니다.
정란 교수는 "결국 기술자들이 하청을 받아서 일을 하는 구조인데, 하청을 받아서 일하는 사람한테 무슨 권한과 책임이 있겠나. 만약 문제를 발견한다 해도 바로잡기 쉽지 않다"고 꼬짚었습니다.
검단 아파트 사고조사위원장을 맡은 홍건호 호서대 교수도 "사실 건축설계는 건축사가 책임지고 하게 돼 있고 내부의 구조 부분은 구조 설계회사에 다시 하청을 주게 되는데, 설계도면에는 17개 기둥에 철근을 설치하라고 나와 있었지만 시공사에서 그런 것들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 교수는 매번 발표하는 정부의 재발방지대책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관련법을 개정해 현장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에서입니다.
그는 "일본의 경우 구조 건축사, 설비 건축사 등 전문 건축사들이 많다 보니 현장에서 설계와 감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며 "현행 건축법을 개선해 건설 현장의 전문성을 높여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연이은 부실시공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현장의 전문성 결여와 업계 관행인 불법하도급 등을 지목했습니다. 사진은 인천 검단신도시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현장 모습.(사진=뉴시스)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관행 중 하나인 '불법하도급·재하도급'도 부실시공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힙니다. 예컨대 대단지 아파트 신축공사를 수주한 종합건설사(대기업)는 분야별로 일부 전문건설사들에 일감을 나눠주는데, 이 과정에서 1차 하도급이 발생합니다.
종합건설사는 상당한 이익을 챙기는 동시에 공사 부담을 덜어냅니다. 이후 일감을 따낸 일부 전문건설사들이 또다시 본인들의 이익을 챙기고 더 작은 전문건설사에 일감을 맡기면서 재하도급(2차 하도급) 구조가 형성됩니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는 "제일 말단에서 일감을 받는 영세 업체들은 거의 기아 선상에 내몰린다"며 "출혈 경쟁 속에서 사업을 수행하다 보니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줄 리도 없고 자신들 이익도 뽑아내야 하니 그 과정에서 부실이 발생하는 굉장히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목했습니다.
그러면서 "대기업이 직접 관리·감독하면 문제 없이 시공하겠지만 하청에 재하청으로 가니까 사람들인식에서도 책임을 지기보다 면피하려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국토부가 지난 5월말부터 약 20일에 걸쳐 전국 77개 불법하도급 의심 현장을 점검한 결과, 33개(42.8%) 현장에서 58건의 불법하도급이 적발된 바 있습니다. 특히 적발된 불법하도급 58건 중 42건(72.4%)은 건설업을 등록하지 않거나 해당 공사 공종 자격을 갖추지도 못한 업체에 공사를 하도급한 무등록·무자격자 하도급이었습니다.
건설업계의 자정 움직임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시점에서 관건은 어떤 제도나 규정이 미비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원칙과 규정준수'라는 원론이 다시 강조돼야 한다"며 "인천 사례 역시 설계, 감리, 시공까지 전반에 걸쳐 문제가 지적된 상황이기에 단순 보수보강이 아닌 전면철거 후 재시공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유사 사례가 발생한다면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이라는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크다"며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우리 사회에 보다 바람직한 선례가 될 것으로도 평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업계에서는 광주 화정아이파크와 검단 아파트 재시공으로 각각 약 4000억원, 5000억원의 추가투입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종=조용훈·정해훈·김유진 기자 joyongh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