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연석·배덕훈 기자] HD현대중공업그룹 선박 사업의 보증서비스(AS)를 대행하는 HD현대글로벌서비스(HGS)가 협력업체를 상대로 156억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HGS가 청구한 손배액 156억원은 협력업체에 지급한 하도급대금액(1억2500만원)의 125배에 달합니다. 해당 협력업체는 삼영검사엔지니어링(삼영검사)으로 지난해 기준 총자산 233억원, 당기순이익 13억6000만원의 중소기업입니다. 때문에 대규모 손배액은 회사의 생존 자체를 가를 수도 있습니다.
삼영검사는 대기업인 HGS가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책임을 협력업체에 떠넘기고 있다며, 청구된 손배액이 적정한지를 법정에서 다투기로 했습니다. 또한 ‘하도급거래법’ 위반 혐의로 HGS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
삼영검사 “과실 인정하지만 배상금 과다”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삼영검사가 156억원 손배 소송을 당하게 된 사정은 이러합니다. 삼영검사는 조선, 플랜트 등 제품과 구조물의 안전성 검사를 하는 비파괴검사 전문업체로, 지난 2021년 6월 HGS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리·검사 용역 위탁계약을 맺습니다.
HGS가 현대삼호중공업으로부터 LNG 선박 무상보증 수리·검사 용역을 위탁받은 뒤 삼영검사에 재위탁한 업무였습니다. 이 선박(마란가스 아가멤논 S690호)에는 LNG를 담는 4개의 탱크가 있는데, 삼영검사는 3번 탱크의 화물창 누설검사를 맡았습니다.
LNG 운반선 마란가스 아가멤논 S690호. (사진=현대삼호중공업 홈페이지 갈무리)
사고는 한 달여 뒤 카타르에서 일어났습니다. 운항 중인 선박이 잠시 카타르에 정박하는 20여일 동안 작업이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삼영검사 검사원이 화물창 방벽 사이 공간에 질소를 과도하게 주입하면서 화물창에 변형이 생긴 겁니다.
상황만 보면 삼영검사 측의 과실이 명백하지만, 156억원 손배액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과정에 HGS의 계약 외 추가 업무 지시와 부실한 현장 관리·감독이 영향을 끼쳤다는 겁니다. 원청인 HGS도 사고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거죠.
협력업체에 계약 외 업무 무상 요구
계약서상 삼영검사의 업무는 3번 화물창 검사와 수리였습니다. 하지만 HGS는 카타르 현지에서 4번 화물창도 추가로 검사할 것을 요구합니다. 선주인 ‘마란가스 마리타임’이 다른 화물창에도 하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HGS는 추가 업무에 대한 계약서나 발주서도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도급법 위반의 소지가 있습니다. 하도급법 제3조 1항에는 원사업자가 하도급계약 이후 추가 위탁 또는 계약내역을 변경할 경우, 이에 대한 계약 서면을 수급사업자에게 발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HGS는 추가 업무를 무상으로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을'의 처지인 삼영검사는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추가 업무로 인해 사전 계획한 수리 일정이 꼬였고, 검사원들은 기간 내에 마치고자 쪽잠을 자며 일하다 사고로 이어졌다는 게 삼영검사 측의 주장입니다.
행정인력이 관리감독하고 책임보험도 미가입
삼영검사는 원청인 HGS의 관리·감독 부실도 사고로 이어진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LNG 선박 화물창 수리 및 검사는 사고 위험이 높고, 사고 발생 시 경제적 손실이 커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원청에서 현장에 전문 엔지니어를 보내는 것이 업계 관행입니다.
삼영검사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해외에서 선박 검사 업무를 했는데, 이때는 현대삼호중공업 소속 전문 엔지니어 2~4명이 현장 관리자로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검사 현장에 입회해 검사 데이터값을 점검하는 등 관리·감독 업무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 때에는 업무 전문성이 없는 연락책 성격의 행정인력 1명만 배치됐습니다. 이에 대해 삼영검사는 “현대삼호중공업으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은 HGS가 삼영검사에 재위탁을 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전문인력 파견을 현대삼호중공업에 요청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HGS는 책임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발생 시 손해가 큰 만큼 원청은 책임보험에 가입하는 게 통상적 관행입니다. 2021년 10월 진행된 사고 처리 협의 회의록을 확인하면, HGS 측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로 현대중공업그룹 최고경영층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삼영검사 측은 “HGS가 전문인력 파견과 책임보험 가입 등 원청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소홀히 한 점은 손배액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모든 책임을 협력업체에 떠넘기는 것 부당한 처사이자 갑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고 조사와 배상 협상에서 협력업체 배제
삼영검사 측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에는 사고원인 조사와 손배액 협상 절차에서 완전히 배제된 탓도 있습니다. 삼영검사 입장에서는 수리를 해야 할 정도로 화물창이 변형된 것은 맞지만, 156억원이라는 청구금액이 대체 어떻게 계산됐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사고 직후 삼영검사는 사고에 대한 과실을 인정하고 선주와 직접 합의하기를 희망했습니다. 또한 적절한 배상액을 따지고자 사고의 진상 파악 및 손해배상 협상 과정에서 한 주체로서 참여하기를 요청했지만, HGS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HGS는 삼영검사를 배제한 채 독단적으로 선주와 배상협상을 진행한 뒤 156억원이라는 손해배상 청구액을 제시했습니다. 삼영검사는 이 비용이 적절한지 법정에서 따져보겠다는 입장입니다.
HGS, 손배액 확정 전에 지급 합의서 서명부터 종용
HGS가 우월적 지위를 활용한 정황은 또 있습니다. HGS는 사고 직후부터 삼영검사에 합의서를 종용했습니다. 과실을 인정하고 수리 비용과 함께 수리 기간 선주 측의 운항손실을 배상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삼영검사 측은 거절했습니다. 손해액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이라 일방적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자 HGS는 삼영검사가 소유한 부동산을 가압류 신청하고, 삼영검사에 대한 보증수리 검사 용역 발주를 전면 중단합니다.
이와 함께 자신들의 그룹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의 신조 선박 검사 용역 발주마저 배제하도록 영향을 끼칩니다. 이로 인해 10여년간 현대삼호중공업 내에 출장소를 두고 40여명의 인력을 상주지키면서 누설검사를 해왔던 삼영검사는 최대 고객을 잃었습니다.
“단순한 손배소송 아닌 원-하청 갑질관계 바로잡는 일”
소송전으로 이어지기 전까지 삼영검사는 원만한 조정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했으나 HGS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법원 조정 절차에서 삼영검사는 20억원의 합의액을 제시했으나 HGS는 5억원 감액한 150억원을 요구하는 등 서로 입장을 좁히지 못한 채 결렬됐습니다.
하청업체와 원청의 분쟁은 보통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됩니다. 하청업체가 이기기도 매우 어렵고 버틸수록 더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조정이 결렬된 지금, 삼영검사의 남은 선택지는 법원과 공정위의 판단을 구하는 겁니다.
삼영검사 관계자는 “이번 소송이 단순한 손해배상 소송을 넘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업체 간의 뿌리 깊은 갑을 관계를 바로잡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HGS “삼영 과실 명백…책임전가 아냐”
한편 HGS 측은 책임전가가 아닌 정당한 손해배상 청구라는 입장입니다. HGS 관계자는 “삼영검사의 과실로 화물창에 심각한 파손이 발생했다”며 “이번 소송은 당사가 선주사에 배상한 운항손실 비용과 수리 비용에 대한 구상을 청구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삼영검사 측이 주장한 계약 외 추가업무 지시에 대해서는 “4번 화물창 수리는 선주사와 삼영검사가 직접 계약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HGS는) 계약 외 업무를 요구한 사실이 없으며, 해당 업무는 선주사가 삼영검사에 직접 의뢰한 건으로, 비용 또한 선주사가 부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인력 미파견 주장에 대해서는 “화물창 검사는 원천 기술을 보유한 GTT(프랑스 사업자)의 인증을 받은 전문업체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관리·감독자가 직접 관여할 수 없다”라며 “해당 업무는 삼영검사가 독자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도급 업무이고, 파견된 인력은 공정관리를 담당할 뿐, 사고 발생과는 무관하다”고 반박했습니다.
또한, 청구금액과 관련해서는 “운항손실로 선주에게 지급한 배상금과 파손된 화물창 수리에 들어간 실비를 청구한 것”이라며 “배상 금액을 과도하게 측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전했습니다.
HGS 측은 “삼영검사는 화물창 수리업체가 아니고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인 데다 과실을 은폐하려 시도한 바 있어 (협상 과정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기에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 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해외는 손배 사안 발생하면 어떻게 할까?
HGS가 삼영검사에 청구한 손배액은 외국 사례와 비교해도 지나치게 과도해 보입니다. 외국계 비파괴검사업체의 경우 검사 용역 도중 발생한 손해에 대한 검사업체의 배상 책임을 일정 한도로 제한한다는 규정을 자체 표준계약서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비파괴검사는 선박, 철도, 기계 장비 등 정밀한 산업 기기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검사 용역 과정에서 손해 규모를 예상하기 어렵고, 그 액수가 상당한 규모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외국계 비파괴검사 업체인 ‘뷰로베리타스 씨피에스 코리아’는 “사고 발생 시 청구 금액은 용역의 대가로 회사가 지급받은 대금의 5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초과할 수 없다”고 말했고, ‘뷰로베리타스 컨수머 프로덕트 서비스 코리아 리미티드’는 “최대한도는 고객이 지급한 대가의 150%로 제한한다”고 규정합니다.
또 다른 외국계 회사인 ‘한국에스지에스’는 “지급된 대금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과 미화 2만 달러 중 적은 금액을 초과할 수 없다”고 했으며, ‘티유브이 슈드 코리아’는 “고객에게 실제 수령한 기성 대금 혹은 재산 손해의 경우 100만유로 경제적 손실인 경우 50만유로 중 적은 액수를 초과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합니다.
만약 삼영검사가 외국계 회사였다면 최대 배상금액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5배인 6억2700만원대입니다. 하지만 국내 비파괴검사 업체들은 외국계 회사와 달리 고객에 대한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해 이같은 손해배상책임 제한 규정을 용역계약에 전혀 반영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유연석·배덕훈 기자 ccb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