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라응찬의 '과유불급'

떠날 때 알고 떠났으면 아쉬움 없었을 것
벌써부터 관치 논란, 실적은 어쩌나

입력 : 2010-11-01 오전 7:00:00
[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국내 최고의 금융지주사, 신한지주(055550)의 라응찬 회장이 30일 사퇴했다. 51년을 뱅커로 살아온 인생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라 회장은 이사회 직전 사퇴를 묻는 질문에 "약속하지 않았냐"며 날카롭게 대꾸했다. 이사직 유지에 대해서도 "검찰 조사하는 겁니까? 고마 하이소(그만하세요)"라고 말하며 기자를 밀치기도 했다.
 
회장 사퇴 후 이사회를 떠나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피하며 "(발언을) 할만큼 다 했다"는 말을 남긴 채 급하게 차에 올랐다. 지난 8월 서울 중랑구  '미소금융재단' 개소식에서 기자들과 막걸리를 나누던 모습과는 판이했다.
 
◇ "재가 돼 떠날 것"이라 했지만...
 
라 회장은 이사회에서 '각자무치(角者無齒)'를 인용했다. '뿔이 있는 짐승은 이가 없다'는 뜻으로 한 사람이 모든 복을 겸할 수 없다는 뜻이다. 최고 은행을 만들었지만 자기 과오는 되돌아보지 못했다는 말 같다.
 
하지만 지금 라 회장에게 더 어울리는 격언은 과유불급(過猶不及)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라 회장은 지난 27일 사장단 회의에서 "내가 (올 3월) 연임한 게 실수"라고 말했다. 후계 구도를 만들어 놓고 자기 허물은 없었는지 되돌아 본 후 '박수칠 때' 떠나는 게 나았다.
 
이래서 20년 전 은행장 취임시, 그의 옛 발언 하나가 지금 와서 회자된다.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원이 돼 최고 자리까지 올랐는데 더 이상 무슨 영광을 바라겠는가. 내 몸을 다 태워 신한은행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떠날 때는 재가 돼서 떠나겠다"
 
◇ 서울 태평로 신한은행 본점 엘리베이터의 경구. 신한이 '라응찬'이라는 관성을 얼마나 빨리 벗어나 '전환'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4분기 실적 걱정
 
이제 남은 건 '관치'와 '실적'논란을 잠재우는 거다.  
 
신한금융 관계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낙하산 인사를 걱정했다. 벌써 하마평에 오른 전임 장관도 있고 G20이후 개각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신한금융의 한 관계자는 "신한 역사상 외부 인사가 경영진으로 온 적이 없기에 구성원 반발이 심할 것"이라며 "3분기 실적은 2조(누적순익)를 넘을 정도로 좋았지만 4분기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4분기 실적은 결국 CEO리스크에 의해 갈릴 거란 얘기다. 다행히 류시열 회장 직무대행은 31일 아침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조직 추스리기에 나섰다.
 
절대 권력, 라 회장은 떠났다. 이사회가 얼마나 외풍을 견뎌내고 실적 개선을 이뤄낼 지, 신한 구성원들이 간절히 지켜보고 있다.  
 
뉴스토마토 황인표 기자 hwangip@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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