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제3자 변제 공탁'에 대한 법원의 거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법원이 '채무의 변제를 제3자가 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일 전망입니다.
19일 광주지법에 따르면 외교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이춘식 할아버지에 대한 공탁 신청 불수리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냈습니다. 법원이 앞서 재단의 공탁 신청을 불수리 처분한 데 따른 것입니다.
광주지법은 앞서 불수리 결정을 내렸던 또 다른 생존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때와 마찬가지로 "피해자 의사에 반해 제3자인 재단이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하거나 공탁할 수 없다"고 불수리 이유를 밝혔습니다.
정부의 배상금 공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건 광주지법에서만이 아닙니다. 이날까지 광주지법을 포함해 수원지법, 수원지법 평택지원·안산지원, 전주지법 등은 정부가 신청한 공탁 10건 중 8건을 거부했습니다.
"적법" 대 "받아들일 수 없어"…정식 재판 통해 결론
공탁은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가해자 쪽이 금전 등을 법원에 맡겨 채무를 면제받는 제도입니다. 피해자가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 법원은 공탁 신청과 이의신청 모두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공탁관이 이의신청 수용을 거부하면 법원 재판부가 공탁 수용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게 되는데, 결국 정식 재판을 통해 결론이 나야 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공탁이 관련 법령에 따라 적법하다는 입장인 반면 법원은 당사자인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련 법령은 민법 469조로, 1항은 "채무의 변제는 제삼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명시합니다. 2항에 따르면 "이해관계 없는 제삼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해 변제하지 못한다"고 규정합니다.
법조계 "문언해석 반하는 주장은 법치주의 무시"
당사자가 제3자의 변제를 거부한다는 의사 표시를 한다면 변제가 불가능한 것이 자연스러운 법적 해석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입니다.
정구승 변호사(일로 청량리 법률사무소)는 "외교적 또는 정치적 문제로 인해 대안을 찾으려는 (정부의) 의도는 알겠지만 문언 해석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것은 기본적인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당국은 잘못된 법 해석에 근거해 법적인 절차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정책적 방안으로 피해자들을 설득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지급 예정 배상금 공탁 결정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