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윤슬처럼 탱글거리며 여름날 물방울이 큰 낙차를 그리듯. 유성우는 검은 심연을 뚫고 우주의 저편에서 이편으로. 세계 속에 세게가 있고 다시 또 세계의 평행선을 그어가는. 지난 21일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일본 록 밴드 래드윔프스(RADWIMPS)의 내한 공연 현장. 청녹색 초신성처럼 반짝이며 곡선을 그려대는 선율들은 흡사 광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웜홀.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스즈메)' 속 신기루 같은 미장센들을 눈 앞에 펼쳐보였습니다.
21일,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 홀에서 열린 래드윔프스의 공연. 사진=제이박스엔터테인먼트
2001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결성된 래드윔프스는 올해로 데뷔 22년차를 맞은 장수 밴드입니다. 메가 히트작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 OST를 담당하는 밴드로도 유명합니다. 지난 3월 국내에서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이어간 가운데, 국내에서도 밴드에 대한 관심 또한 어느 때보다 컸습니다. 5년 만인 이번 내한 공연은 티켓 주 구매층인 30~40대 팬들보다는, 대부분 10~20대 Z세대 팬들을 중심으로 성황을 이뤘습니다.
이날 저녁 7시 반, 밴드는 푸른 전구빛 영상 미학을 성운처럼 펼쳐보인 첫 곡 'Grand Escape'를 시작으로 무대를 열었습니다. 프론트맨 노다 요지로의 손가락들이 신디사이저 건반 위로 미끄러지며, 멜로우한 선율들로 적시자 시작부터 홀이 함성으로 진동했습니다.
21일,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 홀에서 열린 래드윔프스의 공연. 사진=제이박스엔터테인먼트
무대 뒤편 배치된 드럼 두 대 위로 사토시와 아키오의 상반신이 계속 엎어졌고, 베이스와 건자 건반 패드를 오가는 유스케는 심장 박동 같은 리듬들을 만들어냈으며, 아키라의 기타는 넓은 초원과 신비로운 시공의 투명 하늘을 그리는 선율을 쏟아냈습니다.
시원한 록 사운드가 내달릴 때 큐브형 프리즘이 제 각기 크기를 달리하며 얼음 결정체를 빚어내다가도('NEVER EVER ENDER'), 단출한 건반 사운드에 맞춰 물고기가 유영하는 심해로 번지는('Mitsuha no Theme') 영상 미학들은 마코토 영화의 연장선처럼 느껴졌습니다. 최대 히트곡 '너의 목소리' OST 'Sparkle'이 흐를 때 객석의 핸드폰 불빛이 더불어 우주를 만들어냈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래드윔프스입니다. 저희는 못생겼지만 매력있는 밴드에요. 5년 만에 한국을 다시 오게 돼 너무 기뻐요. 끝까지 파티 즐겨주세요."(아키라) 한국어를 곧잘하는 아키라가 재치있게 준비해둔 멘트로 인사하자 객석 관중들이 일본어로 화답을 했습니다. 요지로는 "한국인이 어디있죠?"라고 재치있게 응수했습니다.
21일,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 홀에서 열린 래드윔프스의 공연. 사진=제이박스엔터테인먼트
국내에서는 '아름답고 반짝이는 미장센의 록'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거친 록 편제의 곡들도 이날 라이브에선 가감없이 선보였습니다. 앰프에서 기타 리프가 터져 나올 떄 영사기에 사탕 색깔의 등고선들이 일렁이고('DADA'), 마리오네트들이 빨리감기처럼 흘러가는 영상을 뒤로 할 땐 멤버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듯 속주와 잼의 전쟁을 펼쳐댔습니다.('Oshakashama')
이날 공연의 백미는 '스즈메' OST 'KANATAHALUKA'의 순서.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서로 교차하는 언덕부터 영화 속 장면들이 빠르게 흘러갈 때 2000여 관중들 손에 들린 네모난 화면들의 동그란 빨간버튼들이 일제히 켜졌습니다. 청각적 세계를 시각으로 설계할 때, 소리는 우주의 천체처럼 돌아갈 수 있는 것. '스즈메' 속 문을 열면, 광속의 시간 여행처럼 빨려 들어가듯.
총 16곡과 앙코르 3곡의 대장정을 마치고 일제히 하늘 높이 가위차기를 하며 이날 공연을 마무리했습니다. 태극기를 든 멤버들이 서로를 안으며 파안대소했습니다. 청각적 꿈을 시각적 캔버스로 그려온 20여년의 청춘들. "오고 싶었는데 못 온 한국 팬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내년에는 더 큰 무대에서 보는 것으로 하지요."
21일,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 홀에서 열린 래드윔프스의 공연. 사진=제이박스엔터테인먼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