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장으로 지명된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한동인·최수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 탄압 이력' 등의 논란에도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지명을 강행하자, 정치권 안팎에선 "내년 4년 국회의원 총선거(총선)를 겨냥한 맞춤형 인사"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이동관 카드'를 앞세워 방송통신위원회·KBS 이사회 인적 구성을 좌지우지할 경우 윤석열정부의 '방송장악 논란'은 더욱 증폭할 전망입니다.
방통위·KBS '내 편 만들기'…방송장악 '노골화'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방통위는 지난 25일 여당 추천의 김효재 상임위원과 야당 추천의 김현 상임위원의 후임을 추천해달라는 공문을 국회에 보냈습니다. 이들의 임기 만료일은 8월 23일입니다. 이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마무리되고 임명 강행이 예상되는 8월 말과 시기가 겹칩니다.
방통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상임위원 5명으로 구성되는 '합의제 행정기관'인데요.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임명한 이상인 위원과 이 후보자 외에 나머지 세 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여권 추천 인사인 김효재 상임위원의 후임과 야권 추천 인사 두 자리를 메꿔야 하는 건데요.
윤 대통령은 이미 안형환 전 부위원장의 후임으로 추천된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임명을 이렇다할 설명 없이 미루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방통위 상임위원 구성에 야당을 배제한 셈입니다. 합의제 행정기관인 방통위가 그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언론노조는 이와 관련해 "폭력적 의사 결정만 남은 방통위는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일명 '방통위법(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지명하는 2명의 상임위원을 제외한 3명의 상임위원은 국회가 추천하되,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합니다. 만약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이 강행된다면, 이상인 위원과 함께 방통위가 2인 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2인 체제에서도 전체회의 개최와 의결은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여당의 방통위 장악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정부의 방송장악 계획은 KBS를 통해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KBS 이사는 방통위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현재 비어있는 자리를 여권 성향으로 채우면 KBS 이사회 인적구성은 여당 6명, 야당 5명으로 재편됩니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정부에서 임명한 김의철 KBS 사장에 대한 해임 절차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정부는 감사원을 통해 KBS 감사에 들어갔고, KBS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고지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도 의결했습니다. 공영방송 길들이기에 들어간 셈입니다. 야당이 공영방송 이사회 지배구조를 바꾸는 방송법 개정안을 8월 본회의에 올릴 예정이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습니다. 방송법 개정안의 골자는 KBS 이사 수를 21명으로 증원하고 이사 추천 권한을 방송 관련 학회, 시청자위원회 등 다양한 주체로 확대하는 것인데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무산됩니다.
KBS 수신료 분리징수안이 담긴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11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 KBS정상화범국민투쟁본부가 설치한 근조 화환이 줄지어 있다. 사진=뉴시스
이동관 임무 '방송 장악'…"총선 승리 미션 부여"
이 후보자는 이미 이명박정부(MB) 시절 공영방송 운영에 개입해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훼손한 'MB식 언론장악'의 지휘자로 지목되는 인물입니다.
검찰은 2010년 3월 2일 국정원이 작성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에 대해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실질적인 문건 작성 지시자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국가정보원을 통해 청와대의 지시를 잘 따르는 MBC 경영진을 구축하고, 정부 비판 내용 제작 기자·피디 등을 퇴출시켰습니다.
국정원은 지난 2010년 홍보수석실의 요청으로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및 고려사항'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문건은 '좌편향 선거보도'를 견제할 목적으로 작성됐으며 "심의위원 위촉권한이 있는 방통위원장이 좌편향단체, 특정 방송사 관련자는 공정성 침해 가능성 결격사유로 제시하여 배제"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후보자였습니다.
2017년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MB정부 국정원 불법사찰 의혹을 수사했는데, '홍보수석실이 국정원을 통해 MBC 장악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판단된다'라는 수사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후보자 지명을 놓고 논란이 일자,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이동관 후보자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공영방송 정상화가 두렵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 후보자가 국정원을 이용해 언론을 장악했던 당시도 명목은 '공영방송 정상화'로 지금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후보자 지명 의도는 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 후보자에게 이미 미션이 부여된 것 아닌가"라고 밝혔습니다.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 등 15개 언론협업·시민단체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으로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회견에서 "정권이 임명을 강행한 이유는 '이동관 방통위'를 앞세워 KBS 이사회와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이사들을 해임해 친여 성향으로 재편하고 사장을 교체해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