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IP 시대…게이머 '귀' 사로잡기 사활

'P의 거짓' 주제곡 부른 가수, 유튜브 조회수 14만회 넘겨
100만장 흥행, 음원 발매로 계획 변경
넥슨 오케스트라 매진·전국 공연도
외주는 세계관 이해 한계···전문화 추세
"몰입도 높이고 IP 애정도 올리는 가교"

입력 : 2023-11-02 오후 5:19:48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여러분의 '인생곡'은 무엇인가요? 혹시 영화나 드라마 속 한 장면에 흐르던 노래가 내 인생의 노래로 자리잡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맥락 있는 이야기에 덧씌워져 들려온 음악이나 노래가 문득 내 인생의 극적인 순간과 만날 때, 나만의 주제곡이 완성되는 그 경험 말입니다. 특히나 명장면이 든든한 배경으로 깔려 있다면, 사운드트랙의 힘은 더더욱 배가되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직접 참여해 완성한 명장면을 배경 삼아 음악이나 노래가 들려온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게이머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게임사들이 게임과 현실을 이어주는 음악의 힘으로 팬들의 마음을 단단히 묶고 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 음악 못지 않은 게임 주제곡은 음반 발매에 머물지 않고 전국 단위 공연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가수 서자영의 'Feel' 영상은 2일 현재 유튜브 조회수 14만회를 넘겼다. (사진=유튜브 서자영 채널)
 
귓전에 맴도는 서사
 
네오위즈(095660)는 최근 밀리언 셀러 'P의 거짓' 음악 60여곡을 출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P의 거짓 사운드트랙은 한정판에 CD와 바이닐 레코드(LP)를 합쳐 20곡이 수록됐는데요. 출시 초반만 해도 추가로 시중에 음원을 출시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다만 한국인이 부른 샹송 '매혹의 왈츠(Fascination)'를 LP 음반에만 수록하는 식으로 한정판 소장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작품이 100만장 판매를 기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게임의 인기가 어째서 음반 발매로 이어지는지 모르시겠다면, 유튜브에서 '서자영'을 검색해 보세요. 이 가수는 지난달 14일 자신이 부른 P의 거짓 주제곡 'Feel'을 카메라 앞에서 다시 열창한 영상을 게시했는데요. 이 영상의 조회수는 2일 기준 14만회를 넘겼습니다. 영상 게시 당일 400여명이던 구독자 수는 이날까지 1만1400여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지난달 23일 공개한 주제곡 ‘Quixotic’ 영상도 조회수 4만3000회를 넘겼습니다. 게임 판매량 100만장 중 90만장이 해외에서 팔렸기 때문인지 댓글 역시 외국어가 대부분입니다.
 
Feel은 작중 피노키오가 화석병으로 고통받는 여인에게 아기 인형을 준 뒤, 그녀가 잃어버린 아이가 맞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한 대가로 받는 음반입니다. '당신과 밤새 춤추고 싶다'는 가사가 서글픈 반주와 어우러져, 빗속에서 듣기 좋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밖에 인간으로 거듭난 피노키오가 크라트 호텔에서 연주하는 피아노곡, 제작진이 파란 머리 요정을 재해석한 소피아 주제곡 등도 호평받고 있습니다. 각 장의 보스와 대적할 때 흐르는 장엄한 배경음악도 이미 유명합니다. 보스전 음악은 한정판 CD와 LP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미 네오위즈는 음악 게임 회사로 유명합니다. 리듬 게임 '디제이맥스' 시리즈 개발팀인 로키 스튜디오 산하 음악 레이블 로키 뮤직에서 게임 음악 '틱! 택! 토!'를 멜론과 유튜브 뮤직 등에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Feel 등 P의 거짓 주요 곡은 디제이맥스의 신나는 원곡을 어둡고 쓸쓸하게 재해석한 겁니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선 음악 공연을 계획한다면 P의 거짓에 대한 관심도가 배가될 것이란 전망도 내놓는데요. "한정판 구매자 위주로 DLC(내려받는 콘텐츠) 출시 행사에 초대해 공연을 열어주면, 향후 시리즈 한정판 구매 요인을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입니다.
 
이쯤되니 음악 공연 계획에 대해 그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네오위즈가 혹시나 콘서트를 마련할지 궁금해지는데요. 네오위즈 관계자는 여전히 "현재로선 계획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넥슨 '블루 아카이브'의 첫 단독 오케스트라 공연이 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사진=넥슨)
 
연내 '메이플' 오케스트라 열어
 
음악 공연은 넥슨이 크게 열고 있습니다. 넥슨은 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블루 아카이브' 첫 단독 오케스트라 공연 '사운드 아카이브 디 오케스트라'를 엽니다. 올해 '테일즈위버 디 오케스트라' 공연은 4월 첫 공연 때 전 좌석(2191석)이 매진됐고, 6월에는 2000여명이 관람했습니다.
 
넥슨 관계자는 "연내엔 '심포니 오브 메이플스토리' 오케스트라 추가 공연이 예정돼 있다"며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메이플스토리 20주년을 기념하는 피날레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심포니 오브 메이플스토리는 지난해 3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인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예매 3분 만에 매진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같은 인기 때문에 당초 예정된 2회 공연을 3회로 늘렸고요. 7월부터 전국 순회공연으로 서울·부산·대전·익산·인천·여수·대구 등 일곱 개 도시에서 13회 공연(서울 3회)했습니다. 관객 규모는 총 1만7083명에 달합니다.
 
음반 발매도 흥행했습니다. 블루 아카이브는 지난해 11월 서비스 1주년 기념 사운드트랙 패키지를 냈는데요. 예약 판매 2만2220건으로, 그해 12월 1주 차 알라딘·YES24·인터파크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습니다.
 
넷마블(251270)도 게임 음원 공개를 적극적으로 해왔습니다. 2021년 작 '제2의 나라: 크로스 월드' 주제곡을 음악 감독 히사이시 조가 작곡했는데요. 넷마블은 그의 지휘에 맞춰 도쿄 필하모니 교향악단이 주제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광고로 사용했습니다.
 
이 밖에 넷마블은 '일곱개의 대죄: 그랜드크로스'(2019년), '스톤에이지'(2016년), '이데아'(2015년), '차구차구' 로고송'(2014), '모두의마블송'(2013), '다함께 붕붕붕'(2013) 등의 음원을 공개했습니다. 자사 작품을 '귀에 익숙한 게임'으로 만들어 호감도를 높이려는 전략입니다.
 
엔씨소프트(036570) 역시 지난 1일 '리니지W' 서비스 2주년 기념으로 17곡 분량의 '피로 쓰여진 세계' 사운드트랙을 각종 음원 사이트로 발매했습니다.
 
'P의 거짓' 클로징 크레딧과 추가 영상을 본 뒤 2회차로 넘어가지 않고 호텔에 가면, 인간으로 거듭난 피노키오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음정 곳곳에 회한과 추억이 묻어난 듯 구슬프다. (사진=P의 거짓 실행 화면)
 
"게임 음악도 하나의 산업"
 
게임 음악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드라마와 영화 주제곡은 영상 콘텐츠의 감동을 일상 생활 속에서도 두고두고 기억하도록 이끌곤 하는데요.
 
게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게이머는 가상 세계 속에서 수용자와 수행자 역할을 동시에 하는 까닭에 좀 더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하죠. 몰입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고, 또 자연히 클로징 크레딧을 보며 느끼는 감동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사들이 게임 음악에 투자하는 비용은 대외비지만, 예전보다 중요성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을 정확히 알긴 어렵지만, 음향 전문 인력이나 게임 음악 작곡가 등 전속 작곡가들의 중요도가 많이 올라간 것 같다"며 "과거에는 게임 음악을 외주 맡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게임의 개발·기획 방향과 어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어, 최근에는 전문적인 게임 작곡가 양성·채용이 활발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IP 세계관 확장과 소비의 선순환에 음악이 기여한다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입니다. 이 관계자는 "게임 음악 자체가 이제 시장에서 하나의 산업이 됐다"며 "단순히 배경 음악이 아닌, 하나의 유인 전략"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게임 안에서 게이머의 몰입도를 높이고, 게임 밖에서는 IP 충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음악은 게임과 현실 세계 접점을 넓혀주는 중요한 매개체"라며 "게임과 게이머의 친밀도를 높이는 가교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이범종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