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소희·김유진 기자] 정부 각 부처 차관들이 '물가안정책임관' 완장을 차고 현장 물가 잡기에 돌입했지만 실효성은커녕 총선을 의식한 얼굴 알리기에 불과하다는 핀잔만 나옵니다.
정부는 기업들에게 가격인상 자체를 요구하고 있지만 특정 품목의 ‘두더지 잡기식’에 불과할 뿐, 원가 상승분에 따라 제품 용량을 축소하는 등 꼼수 인상 가능성은 여전한 모습입니다.
특히 대기업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생산원가에 부담이 큰 대기업들로서는 생산원가 인상을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9일 김병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재로 교육부, 과기부, 문체부, 농식품부, 산업부 등 14개 기관이 모인 '제1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는 물가 불확실성에 대응한 부처별 소관 품목 가격·수급 동향에 대한 점검 및 대응 논의가 진행됐다. 사진은 마트 내부 모습. (사진=뉴시스)
'물가 완장' 찬 부처 차관들
9일 김병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재로 교육부, 과기부, 문체부, 농식품부, 산업부 등 14개 기관이 모인 '제1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는 물가 불확실성에 대응한 부처별 소관 품목 가격·수급 동향에 대한 점검 및 대응 논의가 진행됐습니다.
각 부처 차관이 물가안정책임관 역할을 부여받고 현장 대응을 강화하는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가 본격 가동된 셈입니다.
이날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은 서울 홈플러스 영등포점을 방문해 수산물 물가, 정부 비축수산물 판매 및 수산물 할인행사 현황을 점검했습니다. 지난 2일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아 수산물 물가점검을 진행한 이후 연속 행보입니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도 지난 2일 유통현장 서민물가 점검 및 업계 애로사항 청취를 위해 대전 유성구 홈플러스 유성점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농식품부는 한훈 차관 주재로 '농식품 수급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농식품 수급상황실도 차관 직속으로 격상했습니다.
농식품부는 28개 주요 농식품 품목에 대해 전담자를 지정해 중점 관리에 들어갔습니다. 가공식품 물가 체감도가 높은 빵, 우유, 스낵과자, 커피, 라면, 아이스크림, 설탕, 식용유, 밀가루 등 9개 품목에 대해서는 담당자를 지정, 관리에 주력합니다.
하지만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정부 한 관계자는 "대부분 대외여건이나 작황 등 요인으로 농산물 등 신선품목에 대한 동향만 파악하는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계절요인이 사라지는 시점과 비축이 풀리는 품목들은 영향이 가지 않겠나. 실무진들만 업무량이 더 많아질 뿐"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다른 부처 관계자는 "가공식품과 외식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사실 차관이 나서서 물가를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며 "물가 관리라는 타이틀을 걸고 벌써부터 (총선) 선거 캠페인하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 건 사실"이라고 귀뜸했습니다.
가공식품업체 관계자는 "원가 상승분은 커지는 데 가격 인상은 눈치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추후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 등 사정기관을 동원하는 수순이 이뤄질 게 뻔하다. 각 부처 중심으로 물가 점검이 사실상 시장개입이나 마찬가지로 본다"고 토로했습니다.
9일 김병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재로 교육부, 과기부, 문체부, 농식품부, 산업부 등 14개 기관이 모인 '제1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는 물가 불확실성에 대응한 부처별 소관 품목 가격·수급 동향에 대한 점검 및 대응 논의가 진행됐다. 사진은 마트 내 주류 진열대. (사진=뉴시스)
서민 술 값 오르고…소비자에 '부담 전가'
농축수산물은 관세 인하와 정부 비축물량을 시장에 공급하는 등 물가를 조절할 수 있다고 하나 민간 기업에서 생산하는 가공식품 물가에 대한 통제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달 가공식품 물가는 4.9% 상승한 바 있습니다.
농식품부가 물가 동향을 살피겠다고 한 가공식품 9개 품목은 대표적으로 큰 게 오른 품목들입니다. 예컨대 커피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1.9% 상승했습니다. 우유·치즈·계란 9.7%, 식용유 7.9%, 과자·빙과류는 6% 상승했습니다.
한국소비자협회가 올해 3분기 생활필수품 가격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해 3분기 생활필수품(39개)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8.3% 상승했습니다. 39개 중 37개 품목이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제1차 물가관계차관회의가 열린 이날 공교롭게도 서민들의 '술'인 맥주와 소주 가격이 인상됐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이날 소주 출고가를 6.95% 올리고, 맥주 제품 출고가도 평균 6.8% 인상했습니다.
소주와 맥주의 출고가가 오르면서 일반 음식점들도 줄줄이 오를 기세입니다. 이는 외식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외식물가는 지난달 4.8% 오른 바 있습니다.
현재 정부로서는 업계에 가격 동결·인하 권고 등 자체 요청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제품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용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 간접적인 가격 인상 효과를 누리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한 대기업 제품은 편의점용 냉동 간편식품의 용량을 280g에서 230g으로 줄였습니다. 가격은 봉지당 5600원으로 같습니다. 하지만 g당 가격으로 비교하면 기존 20원에서 24.3원으로 21%가 오른 셈입니다.
핫도그 제품도 1봉당 5개입에서 3개입으로 줄였습니다. 다른 업체도 만두 제품 용량을 기존 415g에서 378g으로 낮췄습니다.
무엇보다 대기업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대기업 제품 가격 인상도 뇌관으로 남습니다.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전기 요금이 올라 기업의 생산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물가는 사람이 잡는 게 아냐"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당 제도로 물가를 잡을 순 없다"며 "그동안 물가 오를 때 뭐 하다가 이제 이러나 싶다. 물가를 사람이 잡는다고 잡히지 않는다는 사례가 11년 전에도 있지 않냐. 결국 보여주기식밖에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홍우형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물가가 오르는 이유는 유동성 때문이다. 돈이 풀리니까 소비가 많아지고 물가가 오르게 되는 것"이라며 "때문에 물가를 잡으려면 유동성을 조절해야 한다는 건데, 한국은행이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건 물가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물가 안정은 금리 조정으로 하는 것"이라며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정책으로 펼치고 있으니 결국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천소라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은 이날 '하반기 KDI 경제전망'을 통해 "물가상승세가 아직까지 물가안정목표를 상당 폭 상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9일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제1차 물가관계차관회의'를 개최했다. 사진은 마트 내부 모습. (사진=뉴시스)
세종=김소희·김유진 기자 shk329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