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2차전지 열풍 속 신사업 추진 소식을 전하며 자금 조달을 추진했던 기업들의 조달 철회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주가도 급등한 바 있는데요. 자금 조달 철회 발표와 동시에 주가는 급락세로 돌아섰습니다. 자금 수급 문제로 신사업 실현 가능성도 사실상 사라진 셈인데요. 신사업 추진과 자금 조달 계획이 실제 사업 추진과 무관하게 주가 변동의 재료로만 활용된 단적인 사례로 부각되면서 투자자 환기가 요구됩니다.
적외선 조리기기 제조기업으로 알려진 자이글은 지난 14일 엑스티이에스에스 펀드를 대상으로 한 제 3자배정 유상증자 결정을 철회했습니다. 장 마감 직후 갑작스러운 유증 철회 공시로 자이글은 당일 시간외 하한가를 기록했습니다.
자이글은 올해 초 급격한 주가 상승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았던 곳인데요. 올해 3월 4000원 수준에서 거래되던 자이글 주가는 2차전지 사업 진출 소식과 함께 지난 4월4일 3만8900원까이 오르며 10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자이글 주가가 고점에 오른 4월4일은 자이글이 유증을 공시한 날이기도 합니다.
당시 자이글은 현저한 시황변동에 따른 조회공시를 통해 “미국에 2차전지 합작법인설립을 협의 중이며 해외투자유치를 위한 유상증자를 검토 중이다”고 밝혔습니다. 300억원 규모 유증 대상자는 자이글이 미국 2차전지 사업 파트너였습니다. 합작법인 자이셀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던 XT 계열 펀드죠. 자이글은 현물출자를 통해 자이셀 지분 일부를 확보했습니다. 사실상 XT 계열 펀드가 자이글의 2차전지 사업을 주도하며 자금 수혈까지 맡은 거죠.
자이글은 유상증자 철회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
LG에너지솔루션(373220)에서 2차전지 품질관리를 맡은 김영대씨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며 "2차전지 사업을 여전히 추진 중이다"라고 강조했는데요. 조인트밴쳐(JV)의 주축이 발을 뺀 시점과 맞물리면서 신사업에 대한 신뢰도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윈텍(320000) 역시 최대주주인
라이트론(069540)을 대상으로 하는 3자 배정 유증을 철회했습니다. 지난 5월 윈텍의 새 최대주주에 오른 라이트론은 바이오, 2차전지, 리튬 광산 등의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윈텍 인수 직후 2차전지 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몰리브덴 광산 인수 소식을 전했고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4월 2000원대에서 거래되던 주가는 9월 들어 7000원에 근접하기도 했죠. 다만 라이트론의 윈텍 유증 참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라이트론은 보유하고 있던 전환사채(CB) 재매각을 통해 윈텍 유증 자금을 마련하려 했지만, 재매각이 지연 및 철회되면서 유증도 ‘없던 일’이 됐죠.
유증 철회(8일)를 앞두고 라이트론과 윈텍의 주가도 급락했습니다. 9월4일 6920원까지 올랐던 라이트론 주가는 지난 3일 2285원으로 66.98% 빠졌습니다. 윈텍 역시 8월30일 3695원까지 올랐던 주가가 지난달 27일 2050원으로 44.52% 하락했습니다.
THE MIDONG(더미동)은 최대주주 변경 소식과 함께 사명을 ‘이브이젠’으로 바꾸고 2차 전지 촉매제조·공급업 진출 및 400억원 규모의 3~4회차 CB 발행 등을 공시하며 주가가 급등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최대주주 변경도 CB발행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사명변경 및 사업목적 추가도 임시주총에서 부결됐습니다. 더미동은 올초 1000원대였던 주가가 최대주주 변경 등을 앞두고 3350원까지 올랐는데요. 최대주주 변경 무산 및 CB발행 철회 등으로 주가가 급락해 현재는 500원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어지는 공시번복으로 시장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 실패를 단순히 투자자 책임으로 돌릴 것이 아니다”라며 “시장 전체의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기존 투자자 또는 세력들초차 자금 납입을 포기했다는 말인데, 사업의 실현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고 볼 수 있다”며 “상장사나 일부 세력들이 호재성 공시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어 확정되지 않은 공시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차전지 등 주요 테마업종을 신규 사업 목적으로 추가한 상장사 절반 이상(55%)이 관련 사업 추진이 전무 했는데요. 금감원은 “신사업 추진 발표 전·후 유상증자·CB발행을 통해 외부 자금을 조달하고 타 용도로 사용하거나 사적 유용할 우려도 있다”며 “보여주기식 신사업 추진을 발표한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신사업 추진을 이유로 자금조달에 나선 기업들의 자금조달 철회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