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항소심에서 뒤집혔습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국가면제' 원칙을 이유로 소송 자체를 각하했습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불법행위에 대해선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국제관습법의 흐름이라고 봤습니다.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황성미·허익수 부장판사)는 23일 이용수 할머니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7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21억여원을 지급하라며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가 청구한 금액 전부를 인용한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들이 청구한 각 2억원의 손해배상 금액이 모두 인정됐고 소송 비용도 일본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국제관습법상 피고 일본 정부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하는 게 타당하다"며 "당시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피고의 불법 행위가 인정돼 합당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은 2016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021년 4월 주권 국가인 일본에 다른 나라의 재판권이 면제된다는 '국가면제'원칙을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다르게 판단했습니다.
2심 재판부 "불법행위는 국가면제 대상 아냐"
2심 재판부는 "국제 관습법에 관한 국가 실행과 법적 확신을 탐구하는 데에는 국제 관습법의 변화 방향과 흐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법정지국 영토 내에서 그 법정지국 국민에 대해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선 그 행위가 주권적 행위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국제 관습법이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유엔 국가면제협약, 유럽 국가면제 협약, 미국·영국·일본 등에서 '법정지국 영토 내 사망이나 상해를 야기하는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사례를 그 근거로 언급했습니다.
재판부는 손해배상 책임의 성립 여부와 그 범위도 모두 일본에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는 전쟁 중 군인의 사기 진작을 목적으로 위안소를 설치·운영하고 피해자들을 강제로 납치해 위안부로 동원했다"며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자유조차 억압당한 채 매일 수십명의 피고 피고 군인들로부터 원치 않은 성행위를 강요당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피고의 행위는 대한민국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피해자에게 지급할 위자료가 1인당 2억원을 초과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용수 "정말 감사해"…눈물 흘리며 만세
또 "1965년 청구권 협정이나 위안부 관련 2015년 한·일합의 등 손해배상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있는지 여부, 소멸시효의 완성 여부 등이 쟁점이 될 수 있었는데 피고 측이 항변하지 않아서 판단하지 않았다"며 "헤이그 송달 협약에 따라 피고 측 송달이 진행됐으나 피고가 송달을 반송해 공시송달이 진행됐고 피고측은 답변과 주장이 일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법정에 출석한 이용수 할머니는 선고가 끝난 뒤 법원을 나서면서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감사하다.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 하늘에 계신 할머니들도 내가 모시고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선고기일에서 1심 패소 취소 판결 뒤 법원을 나서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