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대통령 중동순방 성과인 한-아랍에미리트(UAE) 자유무역협정으로 석유화학산업이 궁지에 몰리고 있습니다. 골자는 UAE서 수입한 석유화학제품을 무관세로 풀어주고 우리는 자동차, 전제자품 등 수출에서 무관세 혜택을 얻는 것입니다. 중국시장에서 중동과 경쟁하며 역내 자급력 확대까지 수출난을 겪는 중에 내수까지 밀리면 국내 화학산업이 도태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27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협상 타결을 선언한 한-UAE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에서 우리가 UAE에 양보하는 대표적인 업종이 석유화학입니다. 상대국의 주력 산업이 석유화학이다보니 양허품목도 자연히 쏠리게 됐습니다. 과거 한-중FTA, 한-인도CEPA 때도 비슷한 결과가 중첩돼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석유화학업계에서는 "만년 희생양"이란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이번 CEPA를 통해 무관세로 풀리는 석유화학제품은 합성수지, 합성섬유, 폴리프로필렌, 폴리에틸렌, 기타석유화학제품, 기타플라스틱제품 등입니다. 사실상 주력 화학품목을 거의 모두 아우릅니다. 기존에 UAE서 들여온 석유화학품목은 5대 수입품에 들지 못했습니다. 반면, 우리가 UAE에 수출해온 5대 품목엔 자동차, 차부품 등이 있어 겉보기엔 이번 CEPA가 유리해 보입니다.
하지만 석유화학은 UAE가 탈석유를 위한 산업다각화 정책의 첨병으로 삼는 산업입니다. 산유국인 UAE는 산출물인 석유를 활용하는 석유화학과 높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금속제련 관련 제조업을 집중 육성 중입니다. 더욱이 UAE에 관세를 풀어줌에 따라 사우디 등 GCC(걸프협력회의) 내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요구를 해올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 정부는 GCC와 FTA 협상을 진행 중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산의 값싼 무관세 화학제품이 내수시장에 풀리면 시장이 교란될 것”이라며 “생산능력은 정해져 있어 내수에서 팔지 못하면 수출을 늘려야 하는데 중국 등 수출시장에서도 중동과 경쟁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자급력을 키워 되레 수출을 늘리는 터라 국내 산업이 한없이 밀려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번 CEPA에는 UAE산 원유를 무관세 수입하는 내용도 실렸는데 그간 세수 문제로 기획재정부가 반대해왔던 사안입니다. 부처간 협의를 통해 원유 무관세에 최종 합의한 것으로 보이나 가뜩이나 세수가 부족해 횡재세 논쟁마저 붙은 상황에서 걱정을 더 키웁니다.
협정은 법률 검토와 최종 협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정식 서명하고 국회 비준 절차를 거칠 예정입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세부 협의가 남았는데 현재로선 품목 자체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