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노정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노동계가 즉각적인 시행을 주장했던 노란봉투법이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은 데 이어 중대재해법까지 적용 유예 연장이 추진되면서 노동계 반발이 거셉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거부권 행사 법안들은 국회에서 다시 심사해야 하지만, 가결이 어려워 사실상 폐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최근 정부와 여당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힌 겁니다.
양대노총은 5일 잇따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규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국노총은 이날 오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3년이나 유예한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법 적용이 연기되면 법 시행을 앞두고 준비를 했던 기업들만 바보를 만드는 꼴”이라며 “결국 ‘버티면 된다’는 인식만 확산되고, 법 제정으로 어렵게 확대되고 있던 안전 투자와 인식 전환은 공염불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국노총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노조법 2·3조 거부권 행사 규탄 및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적용유예 연장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안창현 기자)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서도 “지난 20년 넘게 수많은 노동자와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손배 가압류를 제한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기 직전”이라며 “틈만 나면 법치주의를 외쳤던 정부가 사법부와 입법부의 판단을 무시하고, 사용자단체 입장만을 조건 없이 수용했다”고 규탄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노조법 2·3조 재의결에 협조하고, 중대재해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 연장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민주당도 어떠한 경우에도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줘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권리 박탈 안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중대재해법) 시행 유예는 정부와 사용자가 책임지고 부담해야 할 안전비용을 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챙기겠다는 시도”라며 “내년 1월27일 중대재해법이 온전히 시행될 때까지 끈질기게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3일 당정고위협의회에서 중대재해법 유예 연장을 추진하는 데 대해 80만여개에 달하는 대상 기업들이 준비하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인력 양성과 기술 지원 등 방안을 마련해 ‘50인 미만 기업 지원대책’을 이달 안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중소기업 지원과 중대재해법 적용은 별개 사안이란 입장입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노동부가 뒤늦게 시작한 안전 컨설팅 사업은 현장에서부터 실효성 논란이 있다”며 “그렇게 하더라도 내년 2만6500개소 실시 기준으로 25년 이상 소요돼 현실성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중대재해법 개정안 추진을 반대하며 천막농성을 이어간다는 계획입니다.
윤택근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정부가 노조법 2·3조 개정안과 방송3법을 거부하더니, 그나마 있는 중대재해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또 2년 유예하겠다고 했다”며 “정부와 여당이 노동자들이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