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정보통신기술(ICT)업계는 불황의 터널 속에서 경쟁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마련한 해로 요약됩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디지털전환(DX) 가속화로 ICT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이와 연관된 통신·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플랫폼·게임·가상자산업계의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특히 올해는 정부발 압박에 유독 흔들린 해이기도 한데요. 불황과 정부 눈치보기 속 성장동력 만들기에 주력했던 ICT 업계의 1년간 모습을 조망해 봅니다.(편집자주)
[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2023년 통신업계는 '보이는 손'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대통령의 쓴소리와 정부 주문에 따라 요금제 확대와 약관개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했습니다.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경제자유도를 높이라'는 애덤 스미스 이론에 반하는 시장 분위기 속에서 사업자들은 한편으론 사투를 벌였습니다. 1등 자리를 지켜야 하는 입장인
SK텔레콤(017670)은 방어전을,
KT(030200)와
LG유플러스(032640)는 2위 자리를 놓고 혈투를 펼쳤습니다. 경쟁이 없다는 국내 시장이라지만 사업자 입장에선 나름의 치열한 경쟁이 지속됐습니다.
통신업계를 향한 정부의 관심은 연초부터 시작됐습니다. 1월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통신과 금융분야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2월 비경회의에서는 "금융과 통신 분야의 독과점 폐해를 줄이기 위해 실질적인 경쟁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통신시장을 카르텔로 지목한 건데요.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통신3사의 보조금 담합 등 현장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즉각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고, 7월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을, 지난달에는 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을 내놨습니다.
통신시장을 겨냥한 압박 속에 통신3사는 실효성은 떨어졌지만 전국민에게 30GB 데이터를 제공했고, 요금제를 늘리라면 늘렸습니다. 3월 SK텔레콤을 시작으로 5G 요금제를 대폭 확대했습니다. SK텔레콤은 20종에서 45종으로, KT는 22종에서 34종으로, LG유플러스는 22종에서 45종으로 늘렸습니다. 그 결과 이들이 3G부터 5G까지 제공하는 요금제는 300여개를 훌쩍 넘는데요. EY한영회계법인 통신산업의 지속가능경영과 위상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7개국(G7) 통신사 대비 가장 많은 요금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용약관도 개정됐습니다. 내년 1월부터는 통신3사 모두 5G으로 LTE 요금 사용도 가능해지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서울시내 한 휴대폰 대리점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고경영자(CEO) 교체 시점이었던 KT는 올해 8월말까지 경영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도 겪었습니다. 경쟁이 없는 시장 속 이권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논란에 엮이며, 구현모, 윤경림 등 2명의 차기 대표 후보자가 사퇴했고, 3번의 경선레이스를 펼쳤습니다. 김영섭 현 대표를 선임하기 위해 2번의 임시주주총회도 진행했습니다. 20년전 민영화된 회사지만, 정부의 입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은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올해 정책 방향에 최대한 맞추며 몸 사리기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경쟁이 없는 대표적 시장으로 찍혀 보이는 손에 따라 시장이 움직였지만, 유의미한 결과도 만들어 냈습니다.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은 글로벌 5G 속도 1위 자리를 지키며, KT와 LG유플러스를 견제하며 회선수 1위 자리를 지켰는데요. KT와 LG유플러스는 2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본격화했습니다. 사물인터넷(IoT) 회선을 공격적으로 늘린 만년 3위 LG유플러스가 9월 이동통신(MNO) 회선수에서 KT를 앞선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LG유플러스는 10월 회선수 격차를 키우며 2위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1996년 LG유플러스 전신인 LG텔레콤 창사 이래 처음 점유율 순위 판도를 흔든 것입니다. 물론 IoT 회선을 제외한 고객용 휴대폰 회선, 알뜰폰(MVNO)을 포함한 회선의 경우 여전히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순의 경쟁구도가 유지됐습니다. LG유플러스가 3위 사업자로서 시장 판을 흔들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한 결과인 동시에 업계 전체로 보면 경쟁이 마냥 없었던 시장은 아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