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4일 신형전략순항미사일 '불화살-3-31'형 첫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17일 KBS 라디오에서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며 "북한의 공갈에 흔들리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북남 관계가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 "남반부 전 영토 평정", "대한민국 완전히 초토화",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등 초강경 발언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에 대한 대응입니다. 국방장관이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북한 발표를 엄밀하게 보면 '일방적'으로 먼저 '물겠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남반부 전 영토 평정"이라는 표현으로 압박을 극대화한 지난해 12월 30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보고'에서도 그 전제조건으로 "미국과 남조선 것들이 만약 끝끝내 우리와의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려 든다면"이라고 했고, "대한민국 초토화"를 언급한 지난 10일 '중요 군수공장 현지 지도' 때도 "김정은 동지께서는 우리는 결코 조선 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행하지는 않겠지만…대한민국이 우리 국가를 상대로 감히 무력사용을 기도하려 들거나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려 든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북방한계선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발언에서도 "명백히 하건대 우리는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김 총비서의 강경 발언과 최근 '한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청년교양보장법·평양문화보호법 제정 등 북한의 움직임을 묶어 꽤 많은 전문가들이 "공세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어적"이라고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김 총비서의 '동족 관계 부정-통일 폐기' 구상은 크게 보면, 현저한 국력 차이로 통일을 주도할 수 없는 현실에서, 북한의 정체성을 '통일지향 분단국'에서 핵을 가진 '독자적 사회주의 국가'로 재구성하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처럼 북한 발표에는 항상 '조건절'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if’'문장을 잘못 해석하면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김정은 총비서 등 북한 인사들이 '비핵화'와 '핵포기'를 말할 때는 빼놓지 않고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북한은 이처럼 그들 나름대로는 논리적 정합성을 따집니다. 그런데도 북한이 '무조건 비핵화'를 약속해 놓고도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이를 내팽개쳤다는 '무조건 비판'이 횡횡합니다.
헤커 박사-칼린 연구원, '김정은 전쟁 결심'주장도 구체 근거는 없어
최근 미국 미들베리 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김정은 전쟁 결심론'을 주장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물론 현재 한반도 정세가 언제 국지적 충돌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돼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전면전 발발 우려를 제기한 이들의 주장은 '조건절'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다소 '과장'돼 있습니다.
헤커 박사는 미국 핵무기 개발의 산실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장을 역임한 세계적인 핵물리학자입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방북하면서 외부인으로는 유일하게 영변에서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시설과 플루토늄 추출물을 직접 목격해, 한 외부인 중에서는 북한 핵에 대한 최고전문가로 꼽힙니다.
1974년 중앙정보국(CIA) 정보분석관으로 출발, 국무부 정보분석국 동북아 팀장 등으로 일하면서 30여 차례 방북, 북미 대화에 참여한 칼린 연구원은 미국 내에서 북한의 원전을 그대로 읽을 수 있을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춘 몇 안 되는 인물입니다. 2006년에는 그가 북한 입장에 '빙의'해서 쓴 에세이가 너무 그럴듯해, 당시 국내 언론들이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발언이라고 대형 오보를 낸 적도 있습니다.
이런 전문가들의 주장이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김정은 총비서가, 한국전쟁과 같은 전면전을 결심했다는 구체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상황은 한국전쟁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며 "김정은의 최근 언행은 핵무기를 사용하는 군사적 해결을 가리킨다"고 한 정도입니다.
김 총비서의 발언은 '싸움을 걸어오면 전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지 '전쟁을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믈론 정세 판단을 북한 발표문에만 의존할 수 없습니다. 한미연합 정찰자산은 북한의 전면 침공을 적어도 48시간 전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헤커 박사와 칼린 연구원의 주장은 11월 5일 선거일을 앞두고 본격 대선 레이스에 돌입한 미국 대선후보들을 겨냥한 관심 환기용으로 봐야 합니다.
지난 2019년 6월 30알 당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한판 쇄국 정책이라고?…"가장 적대적인 국가" 남한과만 문 닫겠다는 것
김정은 총비서가 잇달아 강경 발언을 내놓자, 지난 18일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가 서울에서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 외교부의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의 통일 폐기 발언과 대남기구 폐지 조치를 이를 '북한판 쇄국정책'이라 규정했으나, 최근 동북아 정세를 보면 이 역시도 오독에 가깝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해 9월 러시아를 방문해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최선희 외무상이 상호 방문했습니다. 양국은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확정하고 구체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한과 중국 사이에도 수교 75주년인 올해 정상회담이 예고돼 있습니다. 중국 건국기념일과 북중 수교 기념일이 있는 올해 10월쯤 김정은 총비서가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합니다.
북러 정상회담 확정…북중 정상회담도 가능성 높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기회 될 때마다 김정은 총비서와 조건 없이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며,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양측이 동남아에서 두 차례 접촉했다고 지난해 7월에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달 초 김 총비서는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기시다 총리에게 '각하' 호칭을 붙이는 위로 전문을 보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북한이 일본에 이런 위로 전문을 보낸 것도 이례적이고, 각하라는 표현을 쓴 건 더 이례적입니다.
미국과는 어떻습니까? 차기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김 총비서와의 과거 우호 관계를 강조합니다. 미국에 대해 온갖 험악한 말을 내뱉고 있는 북한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귀환한다면 북미관계가 어떻게 요동칠지 알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굳이 북한의 현재 동향을 '쇄국'이라 한다면, 김 총비서가 "가장 적대적인 국가"라고 규정한 남한과만 문을 닫겠다는 것 아닙니까?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