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고하는 이재용…M&A 적중률 높았다

초대형 건수 적어도 성과는 탁월
신중 투자…차기로 AI·로봇 거론

입력 : 2024-02-26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신지하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과거 진두지휘한 대규모 지분투자와 인수합병(M&A)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건수 자체는 적지만 신중한 전략을 펼친 덕분에 높은 성과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업계는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사법 리스크가 일부 해소된 만큼 삼성전자가 올해부터 초대형 투자를 본격화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이 관여한 M&A 분야에서 성과가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2017년 인수한 전장·오디오사 하만이 대표적입니다. 하만은 지난해 매출 14조3900억원, 영업이익 1조17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삼성전자가 하만 인수를 최종 마무리한 시점은 2017년 3월입니다. 당시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전장사업 진출을 본격화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고, 인수 대금이 9조원에 달해 무리하게 빅딜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차량의 지능화·자율주행 고도화에 따른 전장사업 성장 가능성을 확신, 하만 인수 작업을 직접 이끈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 시점에서 하만 인수에 대한 이 회장의 판단은 옳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하만은 삼성전자에 인수된 이후 2020년까지 부진을 겪었지만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적 반등세를 이어갔습니다. 최근 2년간 경기부진 탓에 반도체·모바일·TV·가전 등 핵심 사업이 고난의 시간을 보냈던 것과 달리 하만은 삼성전자의 탄탄한 자회사이자 성장동력으로 거듭났습니다.
 
이 회장은 오래전부터 중장기 투자 안목을 길러왔습니다. 그가 삼성전자 사장으로 재직하던 2012년 8월, 회사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사인 ASML 지분 3%를 약 7000억원에 매입했습니다. 이후 2016년 보유 지분 절반을 매각한 데 이어 지난해 2·3·4분기에 걸쳐 나머지 지분도 모두 정리했습니다. 그 결과 투자 원금의 8배에 달하는 6조1000억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됩니다.
 
ASML 지분 투자는 양사의 협력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든 배경의 하나가 됐습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 네덜란드 국빈 방문에 동행하는 기간에 페터르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를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양사는 공동으로 1조원을 투자해 한국에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을 연구하는 R&D 센터를 설립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맺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6일 오후 출국을 위해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회장은 수차례 인수설이 제기된 차량용 반도체 분야는 신중한 행보를 택했습니다. 2019년과 2021년 당시 업계는 삼성전자가 전장사업에 속도를 내는 만큼 네덜란드 NXP 등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를 인수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특히 2021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본격화하면서 관련 기업의 몸값이 급격히 오르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차량용 반도체사 인수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차량용 반도체는 다품종 소량 생산 구조라 수익성을 크지 않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더구나 지난해 초부터 반도체 수급난이 빠르게 해소되면서 관련 기업의 몸값 대란도 안정화했습니다. 당시 이 회장이 결정이 옳았던 셈입니다.
 
이 회장은 최근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 1심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습니다. 검찰의 항소로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이번 1심 판결로 비교적 유리한 위치를 확보했다는 게 업계의 관측입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그동안 멈춰왔던 대형 M&A를 올해부터는 본격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 회장의 차기 대형 M&A 분야는 인공지능(AI)과 로봇, 6G 등이 꼽힙니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의 현금및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단기상각후원가금융자산 포함)은 92조4214억원으로, 실탄도 넉넉합니다. 인수 업체로 거론되는 업체는 레인보우로보틱스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1·3월 지분 14.99%(867억원)를 인수했습니다. 지분율을 59.94%까지 늘릴 수 있는 콜옵션 계약도 맺었습니다.
 
신지하 기자 a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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