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지난 20년 동안 대북제재의 '감시탑' 역할을 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제재' 반대 입장에 따른 것인데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가 유지되고 한·미·일의 대북제재가 추가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 효과를 발휘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대북제재 약화를 계기로 북·중·러가 불법적 협력을 강화하고 북한이 경제를 정상화할 경우 한반도에 미치는 핵·미사일 위협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지난 2022년 11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리고 있다.
"대북제재 CCTV가 사라진다"
29일 외교가에 따르면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4월 30일 종료됩니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 28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 연장하는 내용의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상임이사국인 중국도 이번 투표에서 기권표를 던졌습니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응해 만들어진 전문가 패널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8개국에서 파견된 전문가들로 구성, 매년 두 차례 북한의 제재 위반 활동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왔습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모두가 참여하는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 대북제재 이행 상황을 상시 감시하고 위반 활동을 실체적으로 밝히는 만큼, 전문가 패널이 국제사회에서 가지는 힘은 상당했습니다.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전문가 패널의 활동 종료와 관련해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서 CC(폐쇄회로)TV를 파손한 것과 비슷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자체는 유지되지만 이를 감시할 시스템 자체가 없어진다는 겁니다.
이 같은 상황은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와 중국의 기권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미·중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질서가 다극화되면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제재 압박과 안보리 결의 등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 입장을 펼쳐왔습니다.
특히 패널의 일원으로 제재 위반 조사에 참여하는 러시아가 직접 북한과 군사협력을 이어가면서 '대북제재' 무용론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미·일이 사이버 분야를 중심으로 북한에 대한 독자제재를 이어가고 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역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북한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2022년 기준 96.7%에 달하는데, 최근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으로 대러 무역 규모까지 늘려가고 있습니다. 결국 중·러의 협조 없이는 대북제재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2023년 9월13일 러시아 동부 아무르 지역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중·러 연대, 안보리 해체 촉매제"
문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보에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5월 취임식 이후 방중길에 오릅니다. 당초 예고된 방북 일정도 소화할 것으로 관측되는데, 러시아는 '북·중·러' 협력 공고화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최장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통일국제협력팀장은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최근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수출해서 번 돈을 무기 생산에 필요한 화학·금속 원료를 중국에서 사들여 경제·산업 생산을 정상화하는 양상이 관찰되고 있다"며 "북러 군사협력은 유엔 대북 제재를 약화시킬 잠재력이 크다"고 짚었습니다.
최 팀장은 또 "북러 군사협력은 북한이 러시아를 통해 국제 방산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간접적인 통로가 될 수 있다"며 "북한은 러시아를 통해 핵 보유국 지위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외교적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구조적으로 북·중 관계가 심화·발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라며 "중국·러시아가 미국과 대결 상태에 놓인 상황에서 북·중·러가 단단히 뭉치는 것이 최선이고, 그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중국은 대만 문제로 미국과 대결 구도에 있는데, 북한은 '전략 자산'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북·중러의 연대는 유엔 안보리 해체의 중요한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대북제재 약화는 북러 군사협력 강화로 이어지고 북한 경제의 성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데, 자칫 '핵·미사일' 개발로 이어질 경우 한반도 내 위협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북·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신냉전 구도는 갈수록 뚜렷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